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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훨훨 날고 싶지 않은가!
작성자이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09 조회수593 추천수3 반대(0) 신고

 

훨훨 날고 싶지 않은가! 18

  택시 승객을 모시다보면 개신교로가신 분 천주교로오신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오늘 아내를 따라 개신교회로 간 형제 한분을 모시게 되었는데 이유는 고백성사를 보기 싫고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개종을 하였다는 것이다.

         “단거리 손님이라 고백성사에 대하여 설명할 시간이 없어 참으로 아쉬웠다.”

 세례 후, 죄를 짓고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모든 죄를 다 사하여 주셨으니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신심과 죄 사함을 예수님과 일대일로 한다는 신심은 일면 일리가 있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 전체를 요약해 본다면 객관적 구원과 주관적 구원 그리고 죄 사함에 대한 매우 협소한 이해이다.

  그러므로 양심은 흔들리고, 참다 참다못하여 죄책감을 호소하면 믿음이 부족하다는 논리로 밀어붙이는 어는 개신교의 교리는 매우 안타깝다.

                       “오로지 성경만을! 주장하지만,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21-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태오5.23-26

  분명 세례를 받고 또다시 죄의 사슬에 묶일 우리들의 삶을 염려하시어 고백성사를 통하여 자유를 찾아 주시려는 말씀을 성경에 남긴 것은 우리들의 양심의 자유를 찾아주시려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 자비로우신 사랑의 말씀을 외면한 채 나, 믿음 좋다. 나, 믿음 좋다. 하며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자기암시로서 스스로 속이며 살 것인가?

  나는 고백성사에 대하여 교리를 배웠고 살아가면서 고백성사를 통하여 내가 이해하게 된 죄 사함은 인간이 지은 죄는 누구에게 무슨 죄를 지었느냐에 따라 그 용서와 화해와 갚음의 폭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의 성심을 아프게 하였는지? 교인이라면 교회의 명예를 실추 시켰는지? 국가와 소속된 단체에 손해를 끼쳤는지? 당사자 그리고 그의 부모형제에게 물심양면으로 손해를 주었는지? 등등 깊은 성찰과 뉘우침을 통하여.

                         “하느님과 사람들과 당사자에게 용서를 구함과 갚음이다.”

  또한 죄 사함과 벌을 면해주는 것은 상대 쪽에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이며 죄를 범한이가 기워 갚을만한 여력은 있는지 등 폭을 결정하는 것도 상대 쪽에서 결정할 일이지,

                             “내 스스로 아무 일 없다한들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은총으로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온 나는 총 고백성사를 보기로 결심하였다. 흘러가는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교회를 떠낫던 잘못과 죄지은 사실들을 일일이 기록하였고 그렇게 살피고 뉘우친 죄를 모두 고백하여 성사를 보았다.

 나는 고백성사를 보면서 신부님께 내 얼굴을 볼 수 없는 가림막이 밖에서 고백한다는 것은 내 양심에 허락되질 않았다. 의사에게 진단과 치료를 맡기듯 나의 더러운 모습과 영신사정을 상세히 보여드리려고 신부님의 면전에서 나의 죄상을 일일이 고백하는 면담고백을 하였다.

 온화한 얼굴로 고백을 들어주셨지만 죄상을 들으시면서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드셨을까? 좋은 말도 서너 번이면 듣기 싫은 법인데 나뿐아니라 모든 교우들의 고백을 그것도 매번 들으실 태니 정말 죄송하고 감사할 뿐이다.

  나의 영혼 한편에 모아둔 죄는 네게 무거운 짐이었다. 결박당한 채 살아온 어두운 영혼이 고백성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나는 마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듯,

                             “해방과 자유 기쁨과 평화 그리고 위로가 넘쳐났다.”

  나는 주님과 교회, 신부님과 고백성사가 얼마나 고마운 십자가 은총인가 깨닫고 체험하고 감사하였다. 고백성사의 은혜는 화해, 용서, 치유, 복원, 증진, 일치,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작은 상처라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듯 그일(죄)로 인하여 신경 쓰이고 떠오르고 마음이 아프면 고백성사를 통하여 치유 받아야한다는 것이 나의경험을 통한 깨달음이다.

 상처의 겉만 덥고 속이 곪는다면 욱신욱신 쑤실 텐데 죄 사해졌다. 가책 받을 필요 없다. 자신을 속이며 살고 있으니 화해와 용서의 증표로서 주시는 평화가 어찌 있겠는가?

                       “고백성사는 치유와 화해의 성사임을 나는 체험으로 확신한다.”

  하느님과 사제 앞에서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는 인간은 당연히 두렵지만 용서에 대하여 하느님과 사제 그리고 교회 앞에서 죄 사함의 확정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따랐으니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내안에 주어지는 것이다.

 의심하는 것은 자신의 미지근한 신심이며 깨끗한 영혼을 질투하는 마귀의 시샘과 유혹일 뿐이다.

  개신교회로 간 형제여! 고백을 들으시는 신부님이 괴로우실까 가림막이라도 있으면 생각하는 것은 몰라도 그 알량한 죄인의 자존심이 뭐라고 고백성사의 은총을 버리고 아내 따라 개신교로 간단 말인가...........

                                        “형제여, 돌아오라!
                                                     
 훨훨, 날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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