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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멍에와 예수님 따름 그리고 안식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2 조회수590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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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한 몸 편히 살고자 하여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삶을 가볍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지만 생 고생하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는게 참으로 힘들다 싶습니다. 남의 일을 해 주면서 왜 생 고생 하느냐고 묻습니다.

노가다 현장에서 가끔씩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 서로 말할 때가 있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에 관해 이야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아예 말을 꺼내기도 조차 싫어 집니다.

대체로 '너부터 먹고 살아야지' 하는 비아냥거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노가다 하면서 자주 보게 되어진 조선족 한 교포에게 들은 말도 있는데 그들은 장애아기가 태어나면
산에다 몰래 버린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고통을 줄여 주려고 '쥐약'을 먹인다고 합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비아냥거림이 없을 수는 없겠다고 여겨집니다.그렇다면 한국 사람은 어떠할까요.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기도 합니다.

노가다 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자기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일하기도 싫고 또 일하고자 하는 의욕마저도 상실하여 그저 놀고 먹고 자는 것에 길들여진 거리의 노숙자들도 있습니다. 

노가다 삶의 현장은 냉혹합니다. 그런데서 생존의 법칙을 배워가면서 사는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냉정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 바로 노가다 하는 현장의 삶입니다.

그저 놀고 먹는데 익숙해 지는 노숙자들과 같이 놓고 보면 노가다 하는 사람들은 세상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이긴 사람들이다 할 수 있습니다. 노숙자들이 보는 눈은 노가다의 생존 현장이 아니고 거리의 노숙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허약해 집니다.

노가다 현장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삶의 힘을 키우기도 하지만 먹고 놀기만 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곳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보게 되는 눈은 빈둥거리면서 놀고 먹는 일입니다. 이것으로 인간은 인간답지 못해 지기도 합니다.  

개구리를 잡아서 바로 뜨거운 물에 넣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지근 물에 넣고서는 불을 피워 점점 뜨겁게 달구어 가면 개구리는 거기에서 서서히 죽어간다고 합니다. 뜨거워서 바로 뛰쳐 나오지 않고 그 물의 온도에 익숙해 지면서 개구리 몸이 익어간다 말합니다.

건강한 신체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신은 개구리 처럼 놀고 먹는 온도에 익숙해 지면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노가다 삶의 현장은 겨울처럼 차갑기만 합니다. 자기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육신과 정신 노동을 함께 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힘은 인간 정신을 강하게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너무 철두철미해서 남들을 바라보지 않는 경우도 많아 조선족 같은 경우에는 '쥐약'이 그들의 문화적 환경의 한쪽 측면으로 자리잡히기도 하는 것같습니다.

노숙자들이 점점 죽어가는 일과 노가다 하는 사람들 또한 그렇게 죽어 가는 일은 어쩌면 동질의 것입니다.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하신 가르침은 먹고 노는 사람들 속에서 인간을 보며 안식을 얻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그리고 노가다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세상을 보며 안식을 얻는다는 것도 역시 아닐 것입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안식을 얻는 방법은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입니다. 노숙자들이 노숙자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며, 용역인들도 노가다 사람들에게서 배우는게 아닌 것입니다.

노숙자들에게는 자신의 죽은 정신이 있고, 용역인들에게는 세상의 냉혹한 현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제각각 자기 자신들의 멍에를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멍에를 진 것은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배워라고 이르십니다. 그래야 안식을 얻는다고 하시는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메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배워야 하는 '사랑'이다 할 것입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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