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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행의 맛과 고기의 맛 [현대 교회의 바리사이]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4 조회수362 추천수0 반대(0) 신고


[ 믿음의 순종이 없는 고행, 거기서 얻는 맛과 탐욕에 움직이는 사람 ]

동물들이 고기의 맛을 알고 고기의 맛에 탐욕을 부리듯이 믿음의 순종이 없는 고행의 맛을 알고 고행의 맛에 탐욕을 부리는 사람을 뜻합니다.이는 <성전주의>를 말합니다. 가장 작은 이 하나에게도 사랑할 줄 모르면서 날마다 '돌'로 된 성전을 드나드는 것은 <고행의 맛>에 길들여진 것입니다. 자신은 그것이 수덕의 고행이라지만, 실상은 <사랑이 없는 고행의 감흥>에 빠진 것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고기 맛에 길들여진 동물에 불과합니다.

예를들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드나들면서 밤늦게 까지 성경도 읽습니다. 어떤 날 1만원도 없어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와 이야기 중에 그가 말하길 <그러면서 왜 그렇게 아기를 돌보느냐, 그만 두고 차라리 여기서 나가는게 더 낫다>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성전을 사랑하는 줄 알았더니 예수님(성전)을 사랑하는게 아니고 '돌'로 된 성전을 드나들며 밤 12시 넘게까지 성경을 읽는 등 자신의 수덕 고행을 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영적 감흥(마술이다고 스스로 말함)의 맛을 즐기고 그 맛의 탐욕에 길들여져 있을 뿐이지 예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자신을 내어주는 성체성사적인 신앙의 삶)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할 것입니다.

이같은 성전주의는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과 같은 행태인 것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자 하는 율법주의자, 바리사이들의 행태이다 할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성전중심으로 살았지만 성전 밖에 있는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 대해서는 사랑할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실제로 '돌'로 된 성전보다 '살'로 된 성전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중심(그리스도 중심)이야말로 참된 성전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런 성전 중심의 생활이 <자신의 의로움>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생활을 못하는 것은 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는 것이 곧 예수님께 해 주는 것이다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가르침에 순종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밤 12시가 넘도록 읽습니다. 그것이 수덕의 고행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으니 그런 사람의 영적인 흐름(동불적인 흐름)에 동조하는 수도자도 얼마나 웃기는 현상일까요. 이렇게 성전주의자들은 온갖 규정들을 내세워 공동체 내,형제애를 파괴시키는데 있어서는 또한 선수들입니다. 현대 교회의 성전중심주의자들은 바리사이들입니다.

만일 이런 생각을 지닌 이들이 사랑을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봉사 또한 하나의 무상적인 노역 제공으로써 일종의 수덕하는 고행이다고 말한다면 그런 감흥의 맛에 길들여지는 사람은 (수도자가 아니면서 마치 수도자 행세를 하면서) 도리어 사랑을 파괴시킨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동물적인 수도 행세에 동조하는 수도자 또한 동물적인 유사 영성의 위험에 빠진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무관심한 이들은 세례자 요한의 광야 고행과 예수님의 사랑 행동에 본받아 자기 몸을 사랑으로 내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눈(시각)'을 가지게 되고 바리사이적인 행태에서 벗어나게 되어집니다.이는 생명의 길이다 하겠습니다.수덕 100년 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사랑을 행동할 줄 모른다면 말입니다. 왜 고행 해야 할까요. 믿음의 순종인 사랑을 행동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고행의 맛을 고기의 맛으로 알게 되어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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