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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6 조회수531 추천수10 반대(0) 신고

 

          

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루카 3,10-18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오늘은 대림3주일입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대림3주일을 자선주일로 지내기로 정하였습니다. 이날 특별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의 기회를 갖습니다. 이 시간 자선의 의미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달 어느 날, 저녁미사를 시작하려는 시간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미사가 시작되니 기다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부부가 4살 박이 사내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사업에 실패하여 큰 아이는 보육원에 맡기고 이렇게 일자리를 찾아 떠돈다는 것이었습니다. 4살 된 아이도 맡길 수만 있다면 맡기고 싶다고 하면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하였습니다. 잠자리를 준비하고, 아이를 맡길 곳을 이리저리 알아봤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금일봉을 주고 보냈습니다. 다음 날 다시 연락을 취할 것을 부탁하고는 점퍼와 목도리를 둘러 주었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음날 옆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확인해 보니 제가 만난 분이 틀림없었습니다. 밥을 사주고 여관에서 잠을 재우고 돈을 얼마 쥐어 보냈지만 이대로 둬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 청주지역의 성당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이 신부를 속이는 것인지, 신부들이 그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인지? 어찌되었든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천사를 만나진 못하더라도 도움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신부님들이었습니다. 선의의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신부가 이럴 때 곤란함을 느낍니다.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고, 이래 속고, 저래 속고. 그래도 때가 되면 깨우칠 날이 오겠지? 나를 속여먹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히브리서 13장 2절에서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여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5,42).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6,38). 그렇습니다. ‘축복해 주는 이는 자기도 흡족해 지고, 마실 물을 주는 이는 자신도 흠뻑 마시게 됩니다’(잠언11,25). 받기위해 준다면 참 사랑이라고 할 수 없지만 기회가 되면 지혜롭게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9장13절에서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하고 미사 봉헌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 이들, 당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데 말입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이시오.’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2,15-17).


오늘 복음을 보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루카3,8)고 한 요한에게 군중이 묻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카3,10). 세리도, 군인들도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같은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옷을 두벌가진 이는 못 가진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다른 이와 나눠야’ 하며, 세리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말 것’이며 군인들도 ‘갈취하지 말고 자신의 봉급으로 만족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자기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게 처신하되 베푸는 삶, 정의로운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삶의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법을 잘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누구든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리는 계명은 우리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거나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신명기 30,11-13) 성경은 말합니다.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신명30,14). 그런데 마음과 몸이 따로 이고 실천하지 않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성당에 오시면서 거울을 보고 몸단장을 하고 오셨을 것입니다. 오늘뿐 아니라 수시로 거울을 봅니다. 그리고 무엇이 묻거나 잘못되었으면 바로 고칩니다. 저도 거울을 자주 봅니다. 앞이 훤하잖아요? 흰머리라도 좋다 빠지지만 말아다오! 어느 분이 머리 염색약을 슬며시 가져 다 놓으셨는데 발라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더 빠지잖아요. 지금은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하고 지냅니다. 어찌 되었든 아마 얼굴에 무엇이 묻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어디에 비춰봅니까? 거울에 비춰보면 보입니까? 우리 영혼의 상태를 거울에 비춰보면 그 상태를 낱낱이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상태, 영혼의 상태를 비춰보는 거울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우리의 거울입니다.


야고보서 1장21절 이하에 보면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나를 비춰보고 잘못되었으면 바로 고쳐야지요. 왜 고치지 않습니까? 저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어서 그 답을 가르쳐 주었는데 왜 그대로 실천하지 않습니까. 그대로 하면 축복이 주어지는데, 행복해지는데 왜 그대로 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느냐 말입니다. 그 사람은 거울을 보고 얼굴에 무엇이 묻은 것을 확인하고도 그냥 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바보입니다. 가진 것을 , 먹을 것을 나누어 주어라.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어라 하는 말씀을 듣고도 왜 그냥 넘어갑니까?


오늘 2독서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피4,6-7). 말씀을 들었으면 그대로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찰떡궁합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은 너무 예뻐!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말아요! 하였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옳아! 그러니까 우리는 찰떡 궁합이야!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용하게도 알아맞히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주님과 찰떡궁합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매번 지적하고 명하지 않아도 그분 뜻을 먼저 알아듣고 행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들며 무엇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깨우치길 바랍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임금에게 직언을 했습니다. “저의 조언이 임금님께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의로운 일을 하시어 죄를 벗으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불의를 벗으십시오. 그리하시면 임금님의 번영이 지속될지도 모릅니다”(다니4,24). 그러나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자기 영광을 떨치려고 하다가 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제 정신을 차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높이 찬양했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진실하고 그 길은 다 공정하니 그분께서는 교만 속에 걷는 자들을 낮추실 수 있는 분이다”(다니4,34). 기억하십시오. 선을 행하면 죄를 벗고 가난한 이를 도우면 허물을 벗습니다. 태평성대를 누립니다.


그리고 의로운 사람으로 기억 됩니다. ‘인정이 많고 동정 어려 남에게 꾸어주며 모든 일을 양심으로 처리하는 사람, 그 사람은 흔들리지 않겠고 영원히 의로운 사람으로 기억되리라’(시편37,25-26). 그러므로 “너희는 그에게 반드시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줄 때에 아까워하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이 일 때문에,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하는 모든 일과 너희가 손대는 모든 것에 복을 내리실 것이다”(신명15,10).


사도 바오로도 말합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암브로오시오 성인은 자선은 자선을 베푸는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내고 암흑에 빠지지 않게 해 줍니다. 누구든지 자선을 베풀면 그 자선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바치는 좋은 예물이 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요한 비안네 성인도 자선을 하면 영벌을 면하게 됩니다. 사랑의 하느님은 적은 것에도 만족하시니 많고 적음을 떠나 할 수 있는 데까지 자선을 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국 자선은 이웃을 구체적으로 돕는 행위이지만 내 자신의 영생을 보장 받는 것입니다. 자선으로 씨를 뿌릴 때 거기서 거두는 열매로 천국의 곳간이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성 베드로 클리솔로그). 그러므로 이웃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그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 주시고 동시에 영생의 복을 오늘로부터 누리시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어느날 놀부 집에 스님께서 시주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코웃음을 치며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눈을 감고 불경을 외었습니다. 네가 나를 외면 해도 나는 너에게 복을 빌어주마 하고 가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이 소리를 듣고 있던 놀부가 질세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하였답니다. 지나가던 부인이 그 모습을 보고 “잘해봐라 잘해봐라 잘해봐라”했습니다. 마침 고승이 지나가게 되었는데 “왠만하면 주지그래. 왠만하면 주지그래. 왠만하면 주지그래” 하였답니다.

 

 

“자비는 결코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용히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하늘에서부터 저 낮은 곳으로 떨어져 내릴 뿐이다.

자비는 두 번 축복을 내린다.

한 번은 자비를 주는 사람에게

또 한 번은 자비를 받는 사람에게

그러나 자비가

정의의 이름으로 둔갑될 때,

세상의 권능이 하느님의 권능처럼 착갈될 때가 있다.

비록 당신이 정의를 갈망할지라도,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 속에서는

아무도 구원을 볼 수 없음을 늘 기억하라.

우리는 자비를 위해 기도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비를 가르치기 위해

자비로운 행동을 보여 줘야만 한다.-셰익스피어-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민첩하게, 그리고 후회 없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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