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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로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신앙의 해[34]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6 조회수392 추천수2 반대(0) 신고


인생은 도우면서 때론 도움 받고 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돕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가장 배려하여야 할 점은 무엇인가?
도움 받는 사람의 자존심이다.
가난한 사람에게서 자존심마저 빼앗아 간다면 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미국 유학 시절 이야기이다.
생활비가 다 떨어져 막막한 상황에서
잘사는 친구에게 한 달 후에 갚을 테니 1,000달러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빌려줄 수 없다면서 대신 거저 주겠단다.
거저 받을 수 없으니 빌려 달라는 청에 여전히 빌려줄 수는 없으니 그냥 받으라는 거다.
결국 빌리지 못해 한 달 동안 고생한 적이 있었다.
왜 거저 주겠다는 돈을 안 받았을까?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다른 유학생 친구가 내게 1,000달러를 빌려 달라고 했다.
넉넉지는 않았으나 사정이 하도 딱해 빌려주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갚았다.
목돈이 푼돈으로 되돌아 왔다.
그렇게 일 년 반 만에 빌린 돈을 다 받았다.
왜 그에게 마지막 1달러까지 다 받았을까?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금까지 나의 좋은 친구로 있다.

유대인은 가난한 사람도 남을 도와야 한다는 계명을 갖고 있다.
왜 그럴까?
가난한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그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그가 자신을 가난뱅이로만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해
비록 기부 받아 살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기부하도록 법을 만들었다.


중세 시대 유대인 마을에서
성벽을 수리하기로 결정하고 건축비 마련을 위해 랍비들이 모금회의를 했다.
먼저 모금 대상에 대해 논의했다.
그들은 우선 성벽의 혜택을 받고 사는 이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다음은 마을에 임시로 사는 이들의 자격이었다.
1년 이상 머문 사람들은 주민에 준하는 기부의 의무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1년 미만 머문 이들은 여행객이나 임시 주민으로 여겨 의무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다음은 고아들의 기부가 쟁점이 되었다.
오랜 토론 끝에 그들에게도 기부를 받도록 했다.
왜 그랬을까?
거기에는 기부금액보다 고아들의 자존심을 배려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비록 기부로 받아 살아가는 그들이라 할지라도
작은 액수의 기부가 그들이 마을의 주인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선은 베푸는 생활이다.
남모르게 베풀 때가 진정한 의미의 자선이다.
온 동네에 알리며 나누었다면 자선이 아니고 자랑이다.
군중의 질문에 세례자 요한의 답은 단순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누라.’
세리들에게는 속이거나 협박하지 말라고 했다.
모두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베풀어라’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질 주는 것만 먼저 생각한다.
있어야 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많이 가졌다고 쉽게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마음이 문제이다.
나의 자존심도 있듯이 그의 자긍심도 배려해야한다.


그렇다.
자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기에 어떤 경우라도 물질이 자선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그 속에는 돈과 물질이 아닌 마음을 안정시키는 믿음의 생활로 가는 것일 게다.
물질은 나눔의 수단일 뿐이다.
다정한 눈빛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자선이 된다.
 

신앙의 해를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새 희망을 보고 싶어 한다.
거기에서 다가올 영생의 기쁨을 안고 하루하루의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이리라.
진정한 벗을 만나면서 서로 의지하는 이웃과 함께 사는 참 신앙인이기를 바란다.
하느님 그분께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 외에 누가 이런 삶을 살까?
서로의 아름다운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자선에는 언제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스며있어야 한다.
이 대림 셋째 주간에 쉬운 자선부터 실천하자.
주님께서도 함께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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