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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제 그분에게는 누구누구가 없다./신앙의 해[3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7 조회수340 추천수2 반대(0) 신고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성탄도 그리 멀지 않았다.
신약의 첫 내용은 예수님의 족보로부터 시작된다.
그분의 족보에 대한 경험으로는 끝없이 계속되는 동사의 수를 세다가 끝이 난다이다.
그 동사는 ‘낳고 낳았으며 낳았다.’이다.
그 개수를 세다가는 잊고 잊고서는 다시,
그러다보니 ‘끝없이’라는 말밖에 정말 없다.
끝없이 낳고 낳았으며 낳았다 이다.
말로는 아브라함에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까지의 족보이지만
달리 보면 하느님에서 하느님까지의 족보이다.
 

여기에는 성모님 빼고 네 명의 출산한 아낙이 등장한다.
누구누구에게서의 그 누구누구는 반드시 여인네가 끼어있다.
예수님도 ‘누구누구에게서’에서 태어나셨다.
마리아다.
그녀의 남편은 야곱의 아들 요셉이다.
성모님 빼고는 이 여인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다.
혈통을 중시하는 그들 족보에 이렇게 이방인 여인네의 등장은
이스라엘의 바로 심장부에 이방인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족보에 ‘에게서’는 어쩜 필요한 것이었다.

이 예수님 족보는 또 아브라함에서 다윗,
그리고 바빌론 유배,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까지로 연결되면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점들을 세 부분으로 구분하면서 하느님의 개입을 보여주신다.
부귀와 영화를 가져다 준 찬란한 역사와 당시의 그 인물들,
부패한 통치로 타락과 파멸을 뜻하는 암흑의 세월과
그 관여자도 족보에는 두루두루 나타나있다.
그래서 하느님의 능력이 어떤 죄와 치욕에도 방해받지 않고
당신 백성에게 구원의 손길을 주고 있다는 것을 그 백성의 족보에는 암시되고 있다.
 

가계의 영속과 씨족의 유대를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어찌 보면 족보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의 조선 시대가 그랬다.
자신을 내세우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라면 족보 또한 마찬가지이다.
문중에서 부끄러운 사람은 의도적으로 빼 버리고
자랑삼을 만한 벼슬을 한 이는 진실 이상으로 과장하는 게 우리의 족보역사이다.

예수님의 족보는 일반적인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렇게 그 족보에는 부끄러운 것 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왜 그럴까?
하느님의 생각은 사람의 마음과는 다르기 때문이리라.
하느님은 죄와 허물로 물든 우리를
이처럼 도구로 여겨 당신 구원의 역사를 펼치기 위해 오셨다.
그분의 구원 역사는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지나온 우리 삶의 과정을 조용히 들여다보자.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흔적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될 것이다. 
 

또 어떤 복음의 예수님 족보는 그분으로부터 하느님까지 쫙 순서대로 나열했다.
즉, ‘누구누구는 누구누구의 아들이다.’라는 식이다.
아주 단순하다.
그 족보의 시작과 끝은 대략 이렇다.

‘그분께서는 서른 살쯤에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을 요셉의 아들로 여겼다.
요셉은 엘리의 아들, 다윗은 이사이의 아들, 이사이는 오벳의 아들,
유다는 야곱의 아들, 야곱은 이사악의 아들, 이사악은 아브라함의 아들,
아브라함은 테라의 아들, 셈은 노아의 아들, 노아는 라멕의 아들, 셋은 아담의 아들,
아담은 하느님의 아들이다.(루카 3,23-38)’
예수님으로 시작해서 하느님으로 끝난다. 
 

신앙의 해를 보내면서 예수님의 탄생 경위를 전하는 족보를 본다.
이제 다음의 어떤 예수님 족보에서도 예수님다음은 아무도 없다.
그분은 태어나셨지만 만들어진 게 아니다.
계신 분으로 계시다가 오신 것에 불과했다.

그분은 그렇게 다음에 또 오실게다.
누구누구에게서가 아닌 스스로가 그렇게 오실 것이다.
‘누구누구는 누구누구의 아들이다.’라는 식으로도 오시지 않을 것이다.
더더구나 그분에게는 누구누구 ‘에게서’도 이제는 필요가 없다.
그분은 영광에 싸여 오실 것이다.
당당히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여러 천사를 대동하고 보무도 당당히 그렇게 오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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