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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7 조회수665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월요일



The book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Jacob the father of Joseph, the husband of Mary.
Of her was born Jesus who is called the Christ.
(Mt.1,1..16)


제1독서 창세 49,1-2.8-10
복음 마태 1,1-17

언젠가 점심시간 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자매님들이 찾아와 밥을 사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면 좋겠냐고 물으시더군요. 사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는 구도심이라서 오래된 식당은 많지만 아주 근사한 집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즐겨 가는 곳은 주로 백반 집, 김치찌개 집입니다. 그리고 조금 고급스러운 곳이라고 하면 차이나타운이 근처에 있으니 중국집이 되겠지요. 아니면 조금 멀리 바닷가로 나가 횟집을 가야 하는데,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그곳까지 가기란 조금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의 물음에 곧바로 “김치찌개 먹으러 가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저의 발언에 상당히 실망하시는 표정을 지으시며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신부님, 그런 것 말고 다른 것 없어요?”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김치찌개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식사를 아주 맛있게 할 수 있습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 있다면 바로 이 김치찌개입니다. 그런데 자매님들은 크게 실망하시는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었지요.

“김치찌개 싫어하세요?”

그러자 자매님들께서는 “그건 집에서 자주 먹잖아요.”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자매님들은 요리를 해서 식탁을 차리는 주부의 눈으로 보신 것이지요. 그러나 자주 외식을 하는 저로써는 오히려 근사한 요리보다는 가정식 백반과 같은 ‘집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떤 처지에 있느냐에 따라서 좋아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다양한 세상 안에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다른 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일까요? 특히 요즘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대통령 선거운동을 보면서, 또한 이에 대한 사람들의 극단적인 반응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네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경위를 설명하는 족보 이야기입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오셨는지를 알려 줍니다. 어떻게 이끄셨을까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이끌어 오셨고, 이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특히 예수님의 선조로 네 명의 여인, 즉 타마르,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가 나오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모두 비정상적으로 아들을 낳을 뿐만 아니라, 첫째 여인 타마르 외에는 모두 외국인이라는 점 역시 독특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순수성이 제외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복음의 첫 자리에 배치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다양한 사람들의 역사 안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편협된 생각들. 그러한 생각들을 이제 내려놓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을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다양한 이 세상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 다음에는 “이미 너무 늦었어.”라고 말하다 보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다 지나간다(귀스타브 플로베르).



예수님의 기쁜 성탄을 잘 준비하고 계십니까?



엄마와 아들의 대화
 

시장에 함께 온 엄마와 아들. 야채를 저울에 잰 뒤에 값을 지불하는 엄마에게 어린 아들이 묻습니다.

“엄마, 아기는 1㎏에 얼마에요?”

엄마는 깜짝 놀라면서 “아기는 파는 것이 아니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니?”

이에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다시 묻습니다.

“그런데 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무게를 재는 거예요?”

야채를 저울에 재고 나서 값을 지불하는 것을 보면서, 무게를 재기만 하면 무조건 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아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물었던 것이지요.

어린 아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바라볼 수 있고, 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말했다고 무조건 혼을 내야 할까요? 그것도 모른다고 야단을 쳐야 할까요?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요.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는 모르는 것이 마치 큰 죄인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해와 사랑보다는 배척과 미움이 세상에 더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요?

이해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 주님께서 이 땅에 완성하시고 싶었던 하느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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