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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역사를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합시다. -뿌리공부의 중요성- '12.12.17. 월,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7 조회수33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2.12.17 대림 제3주간 월요일 창세49,1-2.8-10 마태1,1-17

 

 

 

 

 



역사를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합시다.

 

-뿌리공부의 중요성-

 

 

 

 

 


오늘은 ‘역사의 렉시오 디비나’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역사를 렉시오 디비나 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행해야

악순환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몇 가지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예전에 잠시 미국의 어느 수도원에 머물 때

한 수사님의 소개 내용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산책 중 큰 두 나무 앞에 멈추며 해 준 설명입니다.

 


“이 두 나무는 수련 후 첫 서원으로

  동료 첫 서원자와 함께 심은 나무입니다.

  수십년 동안 많이 컸지요.

  나무의 역사와 함께 하는 제 수도생활입니다.

  마음이 착잡할 때 이 나무를 찾아와 성소를 새롭게 확인합니다.”

 


제가 유서 깊은 사찰이나 수도원을 찾을 때도

우선 확인하는 게 나무들이요 건물입니다.

천년 이상 된 건물이나 나무들을 대할 때면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고 저절로 경외심도 일어나곤 합니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 수도원 묘지들을 찾을 때

묘비에서 확인하는 수도자들의 생몰(生沒)연대입니다.

이미 수 백 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공동체와 함께 영원히 살아있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전 번 로마를 방문했을 때의 느낌도 새로웠습니다.

100년이면 최근 건물이요 보통은 500-600년 이상 된 건물들이

흡사 로마 전체가 역사박물관이요 영원의 도시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절로 눈으로 보고 배우는 역사공부요,

역사를 숨 쉬며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넉넉하고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요 현재는 미래의 거울입니다.


역사와 단절 고립되어 살 때 정체성의 상실이요

이에 따른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천박(淺薄)한 삶입니다.

 


바로 우리의 현실 같기도 합니다.

나라든 공동체든, 교회든 수도원이든 개인이든

정체성 확립에 뿌리 공부인 역사의 렉시오 디비나는 필수입니다.

 


오늘 마태복음도 예수님의 족보로, 역사로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혈연의 족보이자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족보, 믿음의 구원사입니다.


얼마나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요.

 

이 예수님의 족보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하나하나 존재이유가 주어진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인내와 기다림, 자비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 눈에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구원 역사에 그 나름대로의 몫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탁월해서가 아닌 당신 고유한 생각대로,

또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당신 섭리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인간 도덕 잣대로는 납득할 수 없는 유다와 다말 며느리 간의 불륜입니다.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창세기 말씀대로 구원역사의 일익을 담당한 유다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이르러 완성되는 예언임을 봅니다.


다말뿐 아니라 라합, 룻, 바쎄바를 포함하여 마지막 마리아 역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큰 스캔들의 여인이었지만

하느님은 이들을 당신 구원 역사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끝난 믿음의 족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구원사의 끝이자 동시에 시작입니다.

하여 예수님을 역사의 중심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한 가톨릭교회 믿음의 족보는

1대 베드로에 이어 265대 베네딕도 16세 교황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역시 가톨릭교회의 믿음의 족보에 편입되어 있음을 새롭게 확인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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