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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ㅁㅁㅁㅁ<1/12주님세례> 부끄러운 고백-김예정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7 조회수470 추천수2 반대(0) 신고


 

 

                                             1월12일(일) 음12/12
                        주님 세례 축일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레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바야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애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하늘이 열렸다.        

                                                                                  <마태오 3장 13절-15절>             

 

        


 

 

 

 

하느님의 아들께서 어찌 세례를 받으셔야 했나요?
<하느님의 뜻, 의로움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저희가 세례를 받음도
하느님의 뜻 때문에 이루어지는 일로 알겠습니다.

주님의 뜻으로 다시 태어난 몸
 주님의 뜻으로로만 살 것을 다시 다짐하옵니다!...아멘

 

 


 




 

1월12일(일) 음12/12
聖女마르가리타 부르주아 님..등  





 


 

 ▶마르가리타 부르주아(1.12)

 

성인명

마르가리타 부르져와(Margaret Bourgeoys)

축일

1월 12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선교사,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620-1700년

같은이름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성녀 마르가리타 부르져와(Margarita Bourgeoys)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의 트루아(Troyes) 출신인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20세 때에
카르멜회, 클라라회에 차례로 입회를 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1652년에 그녀는 캐나다의 빌 마리에 정착중인 프랑스 관리가
자신의 식민지 내의 학교선생을 원하자 그에 동의하고
1653년
퀘벡의 몬트리올(Montreal)에 도착하였다.
그 후 4년 동안 ''비교회법적인 수련기''를 마친 그녀는
1658년에 개교한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이 학교는 점차 발전을 거듭하였고, 또 그녀는 ''마리아회''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활약하였지만 이로쿼이(Iroquois) 전쟁으로 인하여 잠시 귀국하였다.
그 후 재차 입국한 그녀는 가장 버림받고 가난한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리하여 1676년에는 노틀담 수녀회의 법적 설립이
퀘벡의 주교로부터 인가되었다.






그러나 1863년에는 수도원이 화재로 불탔으며
2명의 수녀를 잃는 비극이 있었고, 또 담당 주교와의 견해 차이가 심각해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노틀담 수녀회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하였다.
73세가 된 성녀 마르가리타는 건강과 기력이 점차 쇠하자
은퇴하여 여생을 지내다가 1700년 1월 12일에 선종하였다.
 
그녀는 1950년 시복되었고,
1982년 4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수녀회 입회부터 시련을 겪었고

카나다에서 수녀회를 설립 운영함에서도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던

 

노틀담 수녀회의 설립자

성녀 마르가리타 부르져와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오늘

현세의 모든 수도회들이 사회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를 보내주옵소서!...아멘+

 

 


 

 

   



 
 
      ▶안토니오 마리아 푸치(1.12)

       성인명

안토니오 마리아 푸치(Anthony Mary Pucci)

       축일

1월 1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활동지역

 

       활동연도

1819-1892년

       같은이름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성 안토니오 마리아 푸치(Antonius Maria Pucci)
 



 

 
 
성 안토니우스 마리아 푸치(Antonius Maria Pucci,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피스토이아(Pistoia)의 포지오네(Poggione) 출신으로
어느 가난한 농부의 일곱 자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고,
에우스타시우스(Eustasi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마음이 유순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던 그는 특히 본당 일에 열성이었다.
1837년 그는 피렌체(Firenze)에 있는 성모의 종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그때 안토니우스 마리아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평수사이던 그는 매우 정직하고 모범적인 생활 태도로 말미암아
동료들 가운데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관심사는 기도와 순종이었고 그 다음이 공부였다.
 

이윽고 그는 1843년에 사제가 되자 조그마한 어항인
비아레조(Viareggio)의 본당신부가 되어 일생을 그곳에서 지냈다.
주민들은 그를 ''작은 거인''으로 불렀다.
그는 본당의 요구가 있으면 무슨 단체든지 조직하였지만,
항상 거룩한 사랑의 생활이란 목표를 뚜렷하게 심어주었고,
자신이 먼저 모범적인 삶을 보임으로써 신자들도 본받게 헸기 때문이었다.






 
1854년과 1866년 두 차례에 걸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의 사랑은 더욱 돋보였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직접 간호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어린이와 청년들의 교육을 위한 봉사대를 발족시켜
본당사목의 본보기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주민들의 사제''였다.
그는 1962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작은 항구 마을에서 일생을 바친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민들의 사제

비아레조의 성 안토니오 마리아 푸치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오늘

어려운 시골 교회를 이끌고 있는 성직자들을 위하여

천상의 축복을 보내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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