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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18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8 조회수680 추천수13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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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 마태1,18-24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믿음이 깊어질수록 풍요로워지는 우리 삶>

 

 

    마태오 복음의 서두에 장황하게 소개된 예수님의 족보 마지막 부분의 표현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전까지는 족보의 이름이 남자에게서 남자에게로 전해지다가 갑자기 남자는 살짝 꼬리를 내리게 됩니다.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라고 하지 않고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합니다.

 

    때가 무르익었기에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직접 개입하신 이 기적적인 육화강생 사건은 인간적인 사고방식, 통상적인 개념을 완전히 초월하는 사건이기에 기존에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인간적인 시선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사건입니다.

 

    요셉이 훌륭한 것은 정말이지 기이한 사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육화 강생 사건 앞에서 보여준 의연한 태도입니다. 자신 앞에 실제로 벌어진 놀라운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흥분하거나 나대지도 않았습니다. 곤란해 하거나 호기심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억지로 또는 강제로 그 신비를 통찰하려고 기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육화강생의 신비 앞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손길에 맡겼습니다. 자신 앞에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봤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셉은 강생의 신비 앞에서 묵상에 묵상을, 관상에 관상을 거듭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모든 것을 행했습니다.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두말 않고 맞아들였습니다. 여기는 위험하니 잠시 이집트로 피신하라니 즉시 짐을 챙겨서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가라니 ‘예!’하고 또 다시 이삿짐을 쌌습니다.

 

    침묵할 줄 알았던 요셉이었기에, ‘과연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을까?’ 식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요셉이었기에, 언제나 ‘예!’라고 기쁘게 순명하던 요셉이었기에,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우리 삶에 ‘빛’을 가져다줍니다. 그렇다고 신앙이 언제나 우리에게 고통이나 십자가 없는 삶을 지속적으로 약속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 때문에 고민과 부담이 더 증폭되기도 합니다. 오히려 신앙 때문에 상처와 좌절이 커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참 신앙은 우리에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갖은 불행들을 없애주기보다는 그 엄청난 불행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이해하도록 우리를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신앙은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신앙은 전혀 호의적이지 않는 주변 상황들을 새로운 빛으로 비춥니다. 그래서 세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만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만들어줍니다. 결국 믿음이 깊어질수록 더욱 우리 삶도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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