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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임마누엘, 그분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신앙의 해[36]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8 조회수353 추천수2 반대(0) 신고


참을 인(忍)자는 칼 도(刀) 자 밑에 마음 심(心)자가 놓여있다. 
이 인(忍)자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가슴에 칼을 얹고 있다는 뜻이다.
가만히 누웠는데 시퍼런 칼이 가슴 위에 놓여있단다.
잘못 하다가는 가슴 위에 놓인 칼에 찔릴지도 모를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와서 짜증나게 건드린다고 뿌리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을까?
 

움직여 봤자 나만 상한다.
화가 나도 감정이 밀어도 죽은 듯이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이렇듯 '참을 인(忍)'자는 참지 못하는 자에게 가장 먼저 피해가 일어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 평정을 잘 유지 할 줄 아는 게 인내이다. 
 

'참을 인(忍)'자 세 번 쓰면 살인도 면한다는 옛말이 있다.
사실 참기만 한다면 병이 생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랑해야 한다.
차라리 사랑하는 것이 좋다.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인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어렵고도 짜증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인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다.
서로 참고 사랑하자.

요셉은 이해하기 힘든 그 어렵고 참기 힘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는 혼인도 하기 전에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것이다.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삼았을 때에
찾아오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까지도 자기 삶의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였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마태 1,23-24)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요셉은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그분은 성령으로 동정 마리아에게 탄생하시어,
인류의 구원 사업을 펴시고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그때의 그 시각에 재림하시어 우리를 분명히 심판하실 분이시다.
그분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존재하시지만 하나이시고
지금 이 시각에도 믿는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분이 우리와 늘 함께하시지만 우리는 왕왕 그분을 모르면서 지낸다.
아니 모르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을 종종 가진다.
 

질병의 고통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이야기가 있다.
그 내용 가운데 특히 ‘조각 그림 맞추기’에 관한 이야기에 공감을 느낀다.
그 조각들에서 밝지 않은 색깔이나 예쁘지 않은 모양의 조각이라고 해서
그걸 빼면 그 그림은 절대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 인생도 일종의 그림 맞추기와 같다.
인생이라는 그림 조각을 완성하려면
어둡고 예쁘지 않은 그림 조각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은 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조각들은 받아들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조각들을 버린다면 인생의 그림은 완성되지 못한다.
인생의 기쁘고 행복한 순간만을 인정하고
실패와 좌절의 고통스러웠던 것들을 거부한다면 우리 인생의 전체적를 볼 수가 없을 게다.
잊고 싶고 감추고 싶은 마지막 한 조각까지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기에.
그 마지막 한 조각으로 마침내 우리 인생의 그림이 완성될 것이다.
고통과 슬픔이라는 삶의 조각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지혜이다.

신앙의 해다.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그분이라 기회만 생기면 늘 떠나려 한다.
그렇지만 가끔은 자기도 모르게 떠나있음을 후회하면서.
‘임마누엘’이라고 말로는 이야기하지만, 행동은 그분과는 먼 생활을 한다.
그분의 기준을 저버리고
자기 기준으로 밀어붙이는 ‘반(反)임마누엘’적인 생활로 그분을 실망하게 한다.
그분과 함께하는데도 그분의 계명을 쉽게 저버리고 그분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한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망각한 채 그분을 볼 수 없다는 것만으로
반 임마누엘의 삶에 익숙한 우리이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믿음의 사람인 우리와 함께 계신다.

태초에도,
이천 년 전 그 유다의 땅에서도,
승천하신 그 후에도,
지금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그 분명한 믿음의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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