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9 조회수327 추천수1 반대(0)
저는 저의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 자매님께서 성물방에서 ‘성모상’을 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성물방을 여는 시간이 아니었지만, 몸도 불편하신 분께서 어렵게 성당에 오셨는데 그냥 보내드리기가 미안해서 사무장님께 성물방 문을 열어 드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성물방에서 자매님께서 성모상을 고를 시간을 함께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5분 정도 성모상을 고르시더니, 제게 어느 것이 좋겠는지 의견을 물었습니다. 저는 하얀 성모상을 권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자매님께서는 다른 성모상을 고르셨습니다. 저는 그러시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매님은 다른 성모상을 또 보시면서 제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저는 아까 말씀 드린 것도 있고, 제 의견 보다는 자매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드디어 결정을 하셨고, 저는 봉투에 넣어 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다른 성모상을 고르시는 거였습니다. 저는 이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도 12시가 넘었습니다. 아예, 자매님께서 성모상을 고르시는 동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가서, 주보를 가져다가 교정도 성물방에서 보았습니다. 드디어 자매님께서 원래 고른 것으로 하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 중에도 몇 번 제게 또 의견을 물어보아서 저는 ‘자매님 뜻대로 하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드디어 자매님께서 성모상을 사시고, 나가셨습니다. 저는 30분 정도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속에서 불이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매님께서 가시고 나서 생각을 했습니다. 몸도 불편하신 분이, 조카를 위해서 성모상을 고르고 또 고른 것인데 조금 더 친절하게,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대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세상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감사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허망한 것들을 이루려고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년은 365일입니다.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같은 날입니다. 하지만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는 이들에게는 매일 매일이 새롭고 놀라운 날들이 됩니다. 우리는 매일의 날들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생일, 결혼기념일, 국경일, 소풍날, 월급날, 주일, 이사 가는 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날’이 있습니다. 의미와 가치는 우리가 본능에 따라서 사는 동물들과는 다른 존재임을 드러내는 표징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투표일’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6번의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습니다. 1987년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진 이후로 6번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3번은 제가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2번은 제가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의 꽃은 투표에 있다고 합니다. 유권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권리를 기쁜 마음으로 행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세례명은 ‘가브리엘’입니다. 대림시기에는 저의 세례명인 가브리엘 천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성모님에게도 나타나고, 요셉에게도 나타나고, 오늘은 즈카리야에게도 나타났습니다. 같은 운동경기라도 우리나라 선수가 나오는 경기에 더 관심이 있듯이 저도 저의 세례명인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하는 성서 말씀을 들을 때 더 관심을 갖곤 합니다.

가브리엘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냥 사람이 아니고 ‘대천사’라고 합니다. 저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를 좋아합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 제가 있는 공동체, 또 제 자신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 싶습니다. 저의 말과 행동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전하는 지식과 지혜가 기쁜 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의 존재 자체가 기쁜 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기쁜 소식의 근원을 예수님으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으니 회개하고 기쁜 소식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기쁜 소식을 전하였고,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전한 하느님 나라도 기쁜 소식이었지만 이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과 표징들이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권위 있는 말씀과 놀라운 표징들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난과 고통을 겪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사도들에게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두려움에 떨고 있던 사도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오늘 저녁이면 투표의 결과가 발표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떤 이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에게는 ‘아쉬움과 탄식’의 소식이 될 것입니다. 기쁜 소식은 어떤 일의 결과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쁜 소식은 우리의 전 존재가 하느님을 닮는 것입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통이 교차하는 세상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나의 지식과 지혜가, 내 삶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기쁜 소식’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