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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둘’이자 ‘하나’ 사랑의 원리, 통합의 원리- '12.12.21. 금,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21 조회수33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2.12.21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아가2,8-14 루카1,39-45

 

 

 

 

 



‘둘’이자 ‘하나’

 

-사랑의 원리, 통합의 원리-

 

 

 

 

 


오늘 독서의 두 연인을 통해,

또 복음의 마리아, 엘리사벳 두 도반을 통해 퍼뜩 떠오른

‘둘이자 하나’라는 말이었고 오늘의 강론 주제이기도합니다.

 


둘이자 하나는 통합의 원리이자 사랑의 원리입니다.

혼자서는 사람이 될 수 없고 너와 내가 함께 할 때 비로소 사람이요,

하여 사람 ‘인(人)’자입니다.


남자 홀로 있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하느님 말씀대로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여 비로소 사람이요,

하느님과 사람이 함께 하여 비로소 사람입니다.

 


이 모두가 바로 둘이자 하나인 통합의 원리, 사랑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이번 대선을 통해 극명히 드러난

세대 간, 계층 간, 이념 간, 지역 간의 분열과 갈등이 심각합니다.


어느 신문기사의 ‘국민 절반이 울고 있다.’라는 제하의 기사도

예사롭지 않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 법, 빛에 어김없이 따르는 그림자입니다.


옆쪽의 사람들은 패배에 절망하여 울고 있는데

승리에 도취하여 활짝 웃고만 있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이며

통합도 요원할 것입니다.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주는

사랑의 종교, 사랑의 정치 역할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승자나 패자 역시 둘이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빈자와 부자, 영남과 호남 역시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둘이자 하나의 통합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둘의 골은 얼마나 깊고 벽은 얼마나 두텁고 높은지요.

 

참으로 신분 상승이, 개천에서 용 나기가 거의 불가능한 시대입니다.

때로는 불통이 아니 먹통이자 철통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족의 혈연보다, 교회의 신앙보다 더 강한 돈 욕심, 이념 간의 대립입니다.

 

간혹 돈 욕심이나 이념 대립으로

내외적으로 산산조각 나는 가정도 친구도 많지 않습니까?


돈이나 이념의 우상보다 ‘사람이 먼저’고 ‘하느님이 먼저’입니다.

 

‘하느님이 먼저’ 일 때 비로소 ‘사람이 먼저’가 됩니다.


사람이 먼저요 하느님이 먼저라는 이야기는 결국

‘사랑이 먼저’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먼저일 때 비로소 하나이자 둘의 통합의 원리를 살아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를 맞아들였던 엘리사벳처럼

저는 어제 생면부지의 어느 손님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온전히 투신하며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분이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수도원을 찾아 왔어요.”

 


기대에 어긋난 대선결과에 너무 심신이 아파서

주님께 치유를 받기위해 수도원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동병상련입니다.


저는 그분의 심정을 이해하려 최선의 노력을 다해 경청하며 공감했습니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이 위로하고

병든 이는 병든 이가 위로하고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가 위로합니다.

 


예전 가족을 떠나

요양원에서 환우들과 함께 지내며 암 투병 중이던 형님을 방문했을 때

대화 중 다음 말씀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난 여기가 집보다 편해.

  서로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분위기가 참 좋거든”

 


죽음을 앞두고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동병상련의 사랑의 분위기 탓인지

환우들 간의 분위기도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해 보였습니다.


어느 수녀님의 말씀 또한 생각납니다.

 


“우리 수녀원에는 암 치료 중인 수녀님이 대략 열 분은 될 것입니다.

  '찔레꽃'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로 아픔과 위로를 나누는데 큰 힘이 됩니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합니다.

동병상련의 사랑이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합니다.


아마 오늘 마리아 역시 동병상련의 도반 엘리사벳을 찾아 나섭니다.

오늘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성령에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치는 다음 말에

큰 위로와 더불어 마음의 아픔과 갈등도 다 치유되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숨 쉴 사이 없이 쏟아 낸 진정성 가득 담긴 엘리사벳의 고백입니다.

이런 이가 진정 영적도반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물론 태중의 예수님과 요한 역시

주님 사랑 안에서 둘이자 하나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동병상련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처럼 주님 사랑 안에서 도반의 관계로 승화될 때

비로소 온전한 둘이자 하나의 사랑이 성취됩니다.

 


이어 보이는 도반 넘어 우리와 늘 함께하는 주님을

나의 영원한 도반으로 삼을 때

온전히 둘이자 하나의 사랑으로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아가서가 그 사랑의 일치를 보여줍니다.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 넘고 언덕을 뛰어 넘어 오잖아요.”

 


바로 이런 마음으로,

오시는 우리의 연인이신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들입니다.

 


남자와 여자 두 연인의 사랑은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스도와 우리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주님과 둘이자 하나의 관계로 살 때 완성되는 통합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어 당신과의 일치를 굳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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