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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방신학과 정치참여---도나 오쉐이 신부님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22 조회수337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39-45)

오늘 복음(루카 1,39-45)에 나오는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어디를 보아도 혁명적인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은 늙은 할머니였고 한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젊은 시골 처녀였다.
그러나 늙은 할머니는 아기를 가질 수가 없었고(루카 1,7)
젊은 처녀는 아기를 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지만(마태 1,18)
두 사람 모두 아기를 낳았다. 갓난 아기는 누구나 혁명의 씨앗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성모님의 ‘마니피캇(Magnificat)’
‘마리아의 노래’는 우리를 무척 놀라게 만들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라 생각하고 귀담아 들었다면
우리도 혁명의 일익(一翼)을 맡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만 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다.
교회 안에 있는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우리의 본질은 개인적인 에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개인이다.
“우리도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
(로마 12,5) 마니피캇은 개인의 회개를 요구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복음에 따라 살도록 교회로 부르는 것이었다.
 
‘해방신학’ 운동은 남미(南美)의 여러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쟁취하기 위하여 시작되었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치적인 방법에 의존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복음은 정치적인 이념이 결코 아니지만 항상 야당(野黨)을 편들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남미(南美)는 대부분 가톨릭 국가였기 때문에
탄압을 하고 있던 정치인들이 자신들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주요 교회지도자들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따라서 남미의 문제는 ‘우리들’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문제였다.
정치인들에게 요구된 것은 정치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회개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었지만
정치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정의를 위한 투쟁의 맥락에서 보면
성모님의 마니피캇은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라는 예언자적인 소명이다.
개인의 안녕만 생각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우리는 복음에서 자신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구절만 찾으려고 하고 있다.
그리하여 복음을 편안함의 원천으로 왜곡하고 있다.
미국에서 20세기 초에 성가(聖歌)를 패러디하여 유행했던 한 노동운동 가요에 나오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죽을 때 얻는 것은
허망하게도 하늘에 떠 있는 파이 한 조각 뿐이다.”는
가사(歌詞)도 전혀 귀에 들어 오지 않는다.
우리는 파이 한 조각을 하늘나라에서 먹으려고 하지 않고
이 땅에서 먹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없이 편안하게 잘 사고 있는 사람들은
변함없이 잘 살기를 바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는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르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사를 자신의 뜻에 따라 자신이 익숙한 무사안일만 추구하고 있다.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기쁨과 평화와 사랑을 노래한다.
우리는 기쁨과 평화와 사랑의 의미를
더 이상 왜곡하지 않고 훼손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유명한 ‘해방 신학자’였던 구스타포 구티에레즈(Gustavo Gutierrez)가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려고 애쓰는 데에서 옵니다.
기쁨은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니피캇을 통하여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실 때
하느님께서 역사(歷史) 안에서 백성들을 해방시키신 행동도 생각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셨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셨습니다.
성탄의 기쁨 안에는 이웃에게 봉사하는 기쁨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도나 오쉐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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