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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23 조회수565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일



Blessed are you who believed
that what was spoken to you by the Lord
would be fulfilled.
(Lk.1,45)


제1독서 아가 5,1-4ㄱ
제2독서 히브 10,5-10
복음 루카 1,39-45

지금이야 화장실에 보통 실내에 있었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화장실은 주로 야외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무척이나 잘 사는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지요. 저희 집 역시 밖에 위치하고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 이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커서야 상관없었지만, 아주 어렸을 때에는 밖에 있는 이 화장실에 가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어두운 불빛,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적막함 속에 위치하고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기란 참 쉽지가 않았지요. 특히 겁이 많았던 저로써는 혼자서 화장실 가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늘 제 바로 위의 형에게 화장실을 가자고 했고, 착한 형은 늘 저와 함께 화장실을 가 주었습니다.

“형! 있지?”라고 물으면서 화장실 앞에 형이 있는지를 계속해서 확인했던 어렸을 때가 생각나네요. 사실 형이 있으면 편안하게 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 화장실에 왔을 때에는 마치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귀신이 나타날 것 같은 생각에 불안하기만 하더군요. 그렇다면 형이 있으면 왜 편안할까요? 바로 형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두려움과 걱정을 없애줍니다. 그래서일까요? 복음서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걱정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걱정하고 두려워할까요?

주님을 믿는 사람은 걱정하지도 않고 또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만약 지금 걱정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내 곁에 살아계신 하느님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그럴지 않으니까요.

오늘 엘리사벳은 성모님의 방문을 받은 뒤에 곧바로 찬미의 노래를 바치십니다. 그리고 이 찬미의 노래 말미에는 이런 말씀이 이어집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믿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사실 성모님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걱정과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을 상황입니다. 아직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 두려움을 갖기에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는 것 자체만으로 간음했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순간일수도 있지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 성모님. 굳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엘리사벳 성녀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 때문이며, 이 믿음으로 인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혹시 아직도 세상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제대 앞에 켜진 모든 대림초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믿음을 다시금 생각하고 정립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 주님 앞에 한 발 더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모든 실수의 99퍼센트는 변명이 입에 밴 사람이 저지른다(조지 워싱턴 카버).


사람이 거의없는 빈 전철역. 괜히 외로워보입니다.



무엇이 중요한가?
 

사오정 부부가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백화점에 쇼핑을 갔습니다. 물건을 고르느라 가게 한편에 다른 유모차 옆에 나란히 유머차를 세워놓았지요. 물건을 산 아내는 물건을 챙기고, 사오정이 유모차를 밀고 갔습니다. 조금 가던 아내가 유모차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나, 여보. 우리 아기가 아니잖아요.”

그러자 사오정이 말하기를.

“쉿, 이 유모차가 훨씬 더 비싼거에요.”

과연 무엇이 중요할까요? 아기일까요? 유모차일까요?

사오정처럼 쓸데없는 것을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장 중요한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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