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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25 조회수1,686 추천수15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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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 요한1,1-18<또는 1,1-5.9-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내 안에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성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성인(聖人)이 한 분 계십니다. 예수님 성탄을 한 평생 자신의 화두로 삼았던 예로니모(AD 340-420) 성인이십니다. 성인께서 예수님의 성탄과 관련해서 신앙의 후배들인 우리들에게 남긴 말씀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아무리 성탄이 수 백 번 계속된다 해도 여러분 각자 마음 안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지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독일 태생의 도미니코 수도회 회원으로서 신비가이자 대 영성가였던 마이스터 에카르트의 권고를 올 성탄 기도주제이자 묵상거리로 삼아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마리아에게서처럼 우리 각자 안에서도 아기 예수의 잉태와 탄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수를 낳지 못한다면 마리아가 그때 거기에서 예수를 낳았다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늘 새롭게 태어나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영혼 속에서 ‘하느님의 탄생’을 이루어 낼 때, 비로소 한 인간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내 안에 잉태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 옛날 나자렛의 마리아가 그랬듯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다가오는 천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마리아가 그랬듯이 안락한 삶을 포기해야 합니다. 본능과 이기심, 자기중심적 삶을 철저하게도 배제시켜야 합니다. 안개 자욱한 낯선 길을 떠나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멸시를 꿋꿋이 견뎌내야 합니다.

 

    홀로 성탄 구유 앞에서

 

    언젠가 성대한 성탄 전야 미사가 끝나고 행사에 오신 분들이 모두 썰물처럼 성탄 축하행사 자리로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저 역시 서둘러 행사 자리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제 시선이 성당 제대 앞에 마련된 구유에 머물렀습니다. 작고 소박하지만 정성껏 장식된 성탄 구유, 그 안에 모셔진 아기 예수님, 마리아와 요셉, 목동들, 동방박사들, 가축들...저는 갓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홀로 남겨두는 것에 대한 송구스러움에 발길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성전 성탄 구유 앞에 홀로 앉았습니다. 2천 년 전으로 돌아가 봤습니다. 침묵 가운데 편안한 자세로 앉아 한 인물 인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좋은 묵상 기도가 되더군요.

 

    아기 예수님

 

    아둔한 인간의 머리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입니다. 이왕이면 구중궁궐 깊숙한 방, 가장 따뜻하고 안락한 방에서, 내놓으라는 명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전하게 탄생하지 않으시고 어째서 찬바람 숭숭 들어오는 마구간입니까? 만왕의 왕 구세주 하느님께서 동물들 사이에 태어나시다니요? 결국 아기 예수님의 탄생, 하느님의 육화강생은 억울한 일, 이해하지 못할 일, 정말 감당하기 힘든 일로 힘겨워하는 우리들을 위한 탄생이겠지요? 가장 밑바닥 탄생을 통해 적당히 밑바닥인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한 마구간 탄생이겠지요?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하심을 통해 이류, 삼류여서 억울해하는 우리에게 자신감과 힘을 주시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겠지요?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던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하느님,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당신 사랑 앞에 그저 우리의 기도는 감사와 찬미뿐입니다.

 

    성모님

 

    구세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을 직접 내 팔에 안았습니다. 직접 젖을 먹이고 내 손으로 키웠습니다. 그분께서 내 도움에 힘입어 무럭무럭 성장해나갔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언제나 묵묵히 아기 예수님을 위해 엄마로서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기 예수님 곁에 언제나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언제든지 기쁘게 응했습니다. 잠시도 떨어져있지 않고 예수님 주변만을 맴돌았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사랑했습니다. 예수님만을 연구하고 관상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나를 바라 보거라. 그저 예라고 대답하고, 그저 묵묵히 견뎌내며, 늘 예수님 주변을 떠나지 않고, 그분 얼굴을 바라보며, 그분 얼굴을 관상하며, 그렇게 살아온 내 얼굴을 바라 보거라.”

 

    요셉

 

    예수님의 잉태로 인해 그간 꿈꾸었던 소박하나마 단란한 결혼생활은 완전히 물 건너갔습니다. 성령께서 뭔가 메시지를 전해주었지만 전혀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은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치 짙은 안개 속을 걷는 듯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황당하고 기이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누구에게 이야기하기도 그랬습니다.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침묵 가운데 묵묵히 하느님을 뜻을 찾아나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성령의 이끄심에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니 맞아들였습니다. 이집트로 피신하라니 피신하였습니다. 나자렛으로 돌아오라니 돌아왔습니다. 그저 묵묵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그대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내가 말하기보다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도록 내 귀를 열었습니다.

 

    동방박사

 

    준비해온 예물을 다 바쳤고, 또 그토록 뵙고 싶어 했던 아기 예수님을 드디어 발견하고 경배했습니다. 정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구세주 하느님을 우리들의 눈으로 직접 뵙는 기쁨에 황홀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었기에 더 이상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없이 구유 앞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또 다시 일상생활로 되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또 다른 떠남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목동들

 

    시골 목동들도 구세주의 탄생을 크게 기뻐합니다. 저희 유목민들 삶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동’입니다. 더 나은 초원을 향해, 더 적합한 기후를 찾아 부단히 이동합니다. 끊임없는 이동이 습관화된 저희들은 한 가지 진리를 터득했습니다. 보다 간단히, 보다 신속히 이동하기 위해 방법은 오직 한 가지, 꼭 필요한 것 외에 짐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때로 아쉽지만 불필요한 것, 거추장스러운 것, 부차적인 것들은 과감히 버립니다. 이런 저희들이었기에 구세주 하느님의 육화강생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큰 선물이 다가왔습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인류 역사상 가장 은혜로운 대사건입니다. 참으로 고마우신 하느님의 배려로 인해 인류 모두는 단 한명도 빠지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되었습니다. 이토록 헤아릴 길 없는 큰 은총 앞에 우리가 취해야할 태도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기뻐하면서, 감사하면서, 행복해하면서, 아기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일입니다. 침묵 가운데 우리 가운데 오신 하느님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분을 우리 내면에 다시금 탄생하시게 우리 영혼의 문을 활짝 여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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