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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25 조회수655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and we saw his glory,
(Jn,1.1)


제1독서 이사 52,7-10
제2독서 히브 1,1-6
복음 요한 1,1-18

메리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님의 거룩한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10년 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하지요? 아마 어제 성탄 성야 미사를 마치시고 정말로 기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예년과 달리 올 12월에는 강의가 별로 없어서 아주 조용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탄에는 저를 불러 주는 곳이 아예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왕따인가요?). 그래서 어제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성탄을 의미 있게 보낼까를 궁리했지요.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다보니 예수님께서는 소리 없이 이 땅에 오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오셨다고 세상에 시끄럽게 알린 것이 아니라, 적막하다고 할 수 있은 아주 조용한 마구간에서 몇 명의 사람들만이 초대된 가운데 태어나신 것이지요. 저 역시 이러한 예수님의 오심을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조용하게 미사를 봉헌하면 어떻겠냐고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지요.

부모님과 큰형님 그리고 저. 이렇게 4명이 함께 봉헌하는 아주 작은 미사 그리고 아주 조용한 성탄 자정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 세상에 조용히 오신 예수님을 가슴 깊숙이 느낄 수 있는 성탄 자정 미사였지요.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성탄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지요. 아니 예수님의 탄생보다도 12월 25일에만 의미를 두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사람들보다는 파티를 벌이면서 노는 데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이 날은 신나게 놀아야 하고, 이 날은 많은 선물을 받아야 하며, 이 날은 자기만의 기쁨을 위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받아들였던 사람만이 예수님을 직접 뵐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들였던 성모님과 요셉성인. 또한 목동들과 동방박사. 그들 모두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고자 찾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가장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성탄절이라는 날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는 어리석음은 이제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이 성탄절을 맞이해서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묵상하고 반성하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2,012년째의 생신을 맞이하시는 예수님. 또다시 맞이하는 연례행사로만 그치는 성탄절이 아닌, 예수님을 진심으로 내 가슴 깊숙이 모실 수 있는 특별한 성탄절을 만들면 어떨까요? 다시 한 번,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하나하나의 파도처럼 삶의 모든 순간은 특별하다. 삶은 매 순간 우리에게 선물을 보내온다. 그것을 발견하고 즐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토머스 크럼).


부모님과 큰형님 그리고 제가 함께 봉헌한 작고 조용한 미사.



어울림의 축복
 

옛날에 한 공작새 부부가 예쁜 외동딸 공작새를 곱게 키워 숲으로 시집보냈습니다. 그런데 시집 간 딸이 얼마 되지 않아 잔뜩 풀이 죽은 채 친정으로 날아왔습니다. 엄마가 사연을 묻자 딸이 하소연했습니다.

“엄마! 숲의 새들이 다 저를 따돌려요. 외로워 견딜 수가 없어요. 남편도 이해 못해요.”

노련한 엄마는 무엇인가 짐작하고 물었습니다.

“너, 숲에서 아무 때나 꽁지를 활짝 펴서 다른 새들 앞에서 뽐냈지? 내 말 맞지?”

딸은 엄마가 자기의 행동을 알고 있자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꼬리는 하느님의 선물인데 조금 펼치면 어때요?”

엄마가 말했습니다.

“얘야! 하느님이 주신 것은 남을 부끄럽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냐! 골프에는 ‘젠틀맨 골프 상식’이 있는데 그것은 주위에 골프 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골프 얘기를 안 꺼내는 거야! 그 의미를 알겠니?”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숲으로 날아가서 그때부터 다른 새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주 조용히 그리고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잘 어울리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아드님보다도 훨씬 부족하면서도 왜 이렇게 어울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낮추지 않는 우리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나를 낮추어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 곧 예수님을 따르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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