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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모님을 공경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26 조회수415 추천수3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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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행복하게 살라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제3계명까지는 하느님을 잘 섬겨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제4계명은 부모님을 잘 섬겨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저는 여기에서 궁금증이 생긴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모님을 잘 섬기고 행복하게 살았다면 굳이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것을 계명으로까지 주실 이유가 있었을까?

 

그렇다면 부모와 자식간에 어떻게 살았기에 계명으로까지 주셔야만

했을까를 성경을 통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는가?

 

저는 창세기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사건이후부터라고 묵상한 것입니다.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이후 아담과 하와와 카인의 관계가 어떠했을까?

 

아담과 하와가 카인을 용서한다고 아무리 애를 썼던들 동생을 살해한

카인을 올바로 볼 수 있었을까요? 또한 카인 역시 동생을 살해한 이후

부모님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을까요?

 

카인은 아벨을 살해한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을까요?

인간은 자신의 잘못의 원인을 자신 안에서 찾고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밖에서 찾으려고 애를 쓰며 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죄를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에게 첫 책임이 있는가?

바로 아담과 하와에게 있다는 사실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사람의 삶을 묵상해 보면 어떤가?

자신이 살아낸 삶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부모와

환경에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아담이 그랬고 하와가 그러했습니다.

또한 제가 그러했고, 우리들이 그러했습니다.

제 인생이 이렇게 힘들게 꼬인 것이 부모님의 탓이라고 여겼습니다.

사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가장 깊고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갑니다. 왜 그럴까를 창세기를 통해 묵상해 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인간은 카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된 것도 저의 부모님이 그러한

성향을 가지게 된 것도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아담과 하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의미는 사람의 죄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를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사람의 죄의 본질은 사람이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렇게 살게 된 모든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올바로

깨닫게 해 주시려고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셨다고 봅니다.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키 예언서가 어떤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는가를

보시면 더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님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말라 3,23-24 참조)

 

말라키 예언서는 이 말씀으로 구약성경을 마무리를 하고 있으며 바로

신약의 마태오복음서를 통해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십니다.

무엇을 하러 오시겠습니다.

바로 말라키 예언서가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이루시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난 후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이후 부모와 자식간에는 어떤 깊은 골이 패였다고 봅니다.

이제 아기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깊은 골을 메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오셔서 아담과 하와가 동생을 살해한 카인을 바라보던

그 시선을 돌려 주실 것이고 동생을 살해한 이후 부모님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살아야만 했던 카인의 마음도 돌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동안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공부한 이후 치유가 된 것이

바로 부모님과의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결국 내 부모님도 피해자였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살지 못하신 모든 조상님들의

삶으로 인해 그 후손들은 서로에게 자신도 잘 모르는 사이에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음을 깨달은 이후 저는 저의 부모님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삶을 이해하게 된 이후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해가 가능해지자 사랑할 힘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어떻게 생긴 존재인지를 먼저

잘 이해하는 힘이 생겨야 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생겨먹은 존재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하느님과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는지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로 가정공동체를 이끌어

간다면 그 안에서 카인과 같은 자녀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모두 카인과 같은 자녀만 나오는가? 아벨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아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카인이 자신의 삶의 모든 원인을 자신 안에서 찾지 않고 부모님과

환경에서 찾으려고 애쓰며 살았던 사람이라면, 아벨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려고 애썼던

사람이라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한 부모님에게서 똑같은 환경에서도 아주 다른 삶의 길을 사는

형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아벨의 삶은 부족하고 못난 부모님을

탓하고 살지 않고 공경하고 행복하게 해 드리려고 애쓰며 살았던

사람은 아니었을까하고 묵상해 봅니다.

 

그렇게 살았던 아벨은 죽고 카인만 살아남았던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아벨처럼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 길이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아기 예수님께서 그 길이 어떻게 사는 길인지 나자렛에서

몸소 사시며 우리들에게 직접 보여 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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