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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젊고 건강한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신앙의 해[4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28 조회수297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프랑스 루르드 대성당 외부

아기 예수님의 피난에 얽힌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요셉 성인과 핏덩이 아기를 안은 세 가족이 이집트로 가는 도중에 날이 저물었다.
그래서 쉴 곳을 찾았으나
인가는 없고 쉴 곳이라고는 되레 마구간보다 못한 동굴 하나를 발견하였을 뿐이었다.
날씨는 추워서 땅바닥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 있었다.
그때 한 마리의 거미가 가련한 아기 예수님을 보았다.
거미는 이 추운 밤에 아기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생각 끝에 거미는 한 가지 일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그것은 동굴 입구를 거미줄로 얽어서 그대로 망을 만드는 일이었다.


한참 후 헤로데의 파견 군대가
어린 아기를 찾아 죽이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뒤 쫓아왔다.
그들은 동굴입구까지 와서 어린 아기가 그 속에 있지 않나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들 중의 우두머리가 입구의 거미줄을 발견하였다.
거미줄은 하얀 서리로 뒤덮여 있는 동굴 입구를 가로질러 가득 차 있었다.

우두머리가 말했다.
"여보게들, 거미줄을 보게나.
만일 누가 이 속에 들어갔다면 거미줄을 걷고 들어갔을 게 아닌가?
그런데 거미줄이 전혀 상하지 않은 것을 보니 이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분명하네."
헤로데의 군인들은 그렇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 가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크리스마스트리에 금 사슬이나 예쁘게 치장한 은사슬을 두르는 것은
이 전설에서 유래된 풍습이라고들 한다.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 2,13-18)’
 

헤로데는 권력을 유지하려고 자신의 정적들을 살해하는 잔인한 임금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 무렵에 자신의 왕권에 위협을 느껴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 2,16).
힘없는 아기 하나에
수많은 군인을 가진 헤로데의 두려움은 아이러니를 넘어 불쌍한 말로를 드러내고 있다.
이때 억울하게 죽은 아기들의 희생을 교회는 오래전부터 순교로 이해하고 기억해 오다가
중세 이후에는 더욱 성대한 축일로 지내 오고 있다.
아기 예수님을 대신하여 죄 없는 가운데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양로원에 가서 봉사를 하고 식사도 하면서
할머니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곳의 할머니들은 대부분 자식이 없거나,
있다 해도 모실 형편이 못 되는 자식을 둔 이들이다.
할머니들은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지내신다.
그들이 기도드리는 대상은 대부분 자신을 이곳에 버린 젊은 자식들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삶이란 참으로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늙고 병들어 힘든 분들이 젊고 건강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니까.
할머니들은 자신을 버린 자식들을 위하여 누가 볼세라
새벽부터 일어나서 조용히 기도를 한다. 참으로 가슴 아픈 아이러니이다.

이런 역설적인 것은 양로원뿐만이 아니다.
각종 사회 복지 시설을 돕는 후원회원도 줄어들고 연령도 점차 고령화되어 간다.
맞벌이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아졌다지만
자신의 여가 시간을 핑계로 남을 위해 봉사와 헌신하지 않으려는 이가 더 많아졌다.
각종 단체에서 봉사하는 사람도 점점 줄고 그나마 찾는 이도 대부분이 연세가 드신 분들이다.
젊은이들이 어르신을 봉사해야할 것인데, 어르신이 더 오래전의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한다.
그리고 지금의 젊은이들이 너무너무 바빠
어르신들의 봉사를 받아야 할 날도 머지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양로원에서 그리고 여러 사회 복지 시설에서
이런 역설적인 이야기를 우리는 곳곳에서 보고 듣는다.
죄 없고 천진 나만한 아기도 엄청난 권력을 쥐고 그기에 집착하는 헤로데를 떨게 하였다.
그 결과 죄 없는 아기들을 죄 많은 어른들이 수없이 죽였다.
그리하여 여리고 약한 그 아기들이 확실한 주님의 증거자가 되었다.
말 못하는 아기들이 자신의 생명을 바쳐 그 주님을 이 세상에 알렸다.
말 못하는 어린 아기들이 목숨 바쳐 믿음의 증거를 이렇게 고백했다면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증언해야 하는지?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을 기리는 오늘,
젊고 건강한 믿음의 사람인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반성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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