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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정 한가운데에 계시는 분께/신앙의 해[46]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29 조회수351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림 : [프랑스] 루르드 베르나데트 기념관 유품

 ‘성가정’이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모습이 무엇일까?
온 가족이 열심히 성당에 다니고
자녀들이 속을 썩이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이 성가정일까?
우리가 성가정이라고 하면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은 두루 갖추어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본받고자 하는 나자렛 성가정의 모습은 어떠한가?

성모님과 요셉 성인 그리고 아기 예수님의 가정을 성가정이라고들 한다.
얼마나 행복한 가정이었을지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 추측을 한다.
행복한 가정이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왜 행복한 가정이었는지는 그 내막은 별로 깊게 생각지를 않는다.
그냥 ‘행복했으리라.’라고만 너무 쉽게 추측한다.

‘세 분은 싸우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불평도 불만도 없고 온통 웃음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막연히 이렇게만 생각한다.
정말 그랬을까?
세 분에게는 다툼도 불평도 없었을까?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성가정이라 불리게 된 것일까?

이는 잘못된 생각일 게다.
성가정을 단순히 ‘고통 없는 가정’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막일하는 사람일 게다.
오늘날에도 막일꾼들의 삶은 어쩜 고단하다.

이 가정은 혼인하기 전부터 드러내기 부끄러운 부부간에 오해와 갈등이 있었다.
머리 피도 마르지 않은 자식이란 게 고작 하는 게 따지고 덤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고.
이렇게 부모와 자식 간에도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
성모님께서는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아 사흘이나 헤매고 다니신 그 심정이야
어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인들 아셨을 리가! 
 

성전에서 자식을 무사히 찾아 안도하시면서도,
예수님의 대답에 성모님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게 될 것이라는
시메온의 예언이 점점 실현되고 있음을 느끼셨을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주님을 위해 자신의 온 생애를 칼에 꿰찔리는 아픔으로 봉헌하는 삶을 사셨다.
 

모든 자식은 한동안 부모의 마음을 찌르는 ‘칼날’이 된다.
본인은 모르지만 부모는 가슴에 ‘멍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부모들은 그걸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부모와 자식 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가정의 모습을 닮아 간다. 
 

이렇게 성가정은 말썽 부리는 사람이 없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얼마만큼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지에 달려 있다.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시련 뒤에 주어졌다.
하느님께서는 축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이런 시련을 주신다.
시련을 통해 복 받을 사람으로 만드신다.

그러니 우리 가정에 힘든 시련이 있다면
다음에 나타날 그분의 뜻을 기다리는 희망을 안고 참고 견뎌야한다.
이런 과정 과정을 거치면서 성가정으로 바뀌어 가는 게 세상사다.
근심 걱정과 불안이 있는 게 성가정이 아니고
아무 걱정이 없어야 성가정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알아야 한다. 
 

거룩한 가정이 성가정이다.
성모님과 예수님 그리고 요셉 성인께서 함께 사셨기에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세 분께서 ‘사셨다는 그 이유’ 때문에 성가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 분께서 ‘성가정의 사람답게’ 사셨기에 그렇게 부른다.
어떤 삶이 그것이겠는가?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삶’일 것이다.

그러므로 불화가 생기면 성가정에서 탈락되고
화목 속에 살아야만 성가정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갈등 없는 가정은 없다.
그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쓰는 게 성가정으로 가는 삶이리라.
가족이 주는 아픔을 ‘주님의 힘’으로 극복해 나간다면 성가정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나자렛의 성가정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살았다.
그리하여 기꺼이 하느님의 구원의 도구가 되었다.
가정은 가장 작은 교회이다.
가정이 거룩하면 이웃과 사회가 거룩하게 된다.
세상의 복음화는 이렇게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가 성가정을 본받자고 한 이유는 분명하다.
가정의 중심에 바로 그 하느님께서 자리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자렛의 성가정은 분명 인간적인 불행의 여건을 많이 지녔으면서도
그 중심에는 하느님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성가정은 중요한 선택과 결단의 순간에
언제나 가정 한가운데에 계시는 하느님께 뜻을 물었다.
요즈음 많은 가정의 중심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TV, 성경?
후자가 자리 잡은 가정은 누가 뭐래도 분명 성가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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