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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29 조회수578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2월 29일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When the days were completed for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the parents of Jesus took him up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
(Lk.22)


제1독서 1요한 2,3-11
복음 루카 2,22-35

미국에서 있었던 어떤 설문조사 결과를 우연히 인터넷의 한 게시판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즉, 90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좀 더 모험을 해보았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대답이라는 것입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이 분명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을 살면서도 후회를 계속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90세라는 노년에 서게 되었을 때 가지게 될 후회는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리고 그 후회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선택의 기로에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포기했던 것이지요. 나의 편안함, 세상의 시선, 물질적인 욕심 등으로 인해서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택하게 됩니다.

지금의 내 자신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게 되었을 때, 과연 후회를 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흐뭇한 미소를 갖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이 점을 생각하면 함부로 살 수 없게 됩니다. 순간적인 만족, 세속적인 기쁨 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울 수 없게 됩니다. 그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사는 삶, 결국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시메온을 생각해보십시오. 그에 대해 성경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그가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었지요. 그는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위해 평생을 의롭게 살았던 것이지요. 이렇게 최선을 다해 순간을 살았기에 결국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직접 보고 두 팔에 받아 안게 되는 영광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의롭게 사는 모습을 보고서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저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줄까?’, ‘바보처럼 왜 손해를 보면서 사는 거야?’, ‘자기 것도 챙기지 못하니,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 거야?’, ‘하느님을 섬기는데 하느님이 눈에 보여? 하느님 섬긴다고 떡이 나와 빵이 나와?’ 등등의 말을 듣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롭게 살았던 시메온의 삶이 후회가 되는 삶일까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을 뿐더러, 당신의 품 안에 안을 수도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도록 했던 가장 잘 산 삶이었습니다.

정말로 후회되는 사람은 의롭게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중에 주님 앞에 섰을 때 떳떳한 사람이야 말로 가장 잘 산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어떨 것 같습니까? 과연 주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업적보다 변명을 선호한다. 업적은 아무리 위대해도 장래에 다시 입증해야 할 여지가 남지만, 변명은 평생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에릭 호퍼).



이번에 신학교를 지원할 17명의 예비신학생. 좋은 결과가 있기를...



지금 나의 위치는?
 

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를 처음 생산해낼 때 이야기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갔는데 아이들이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지고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답니다. 깜짝 놀랐지요. 그런데 장난삼아, 껌을 줄 테니 다이아몬드 원석과 바꾸자고 하자 아이들은 주저 없이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원석을 가지고 오면 초콜릿을 주겠다고 하자, 너도나도 집에 가서 더 큰 원석을 가져오더라는 것이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이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그러한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어쩌면 가장 하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내 자신을 내어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즉, 순간의 쾌락만을 가져오는 것에, 세상의 물질적인 만족만을 가져오는 것 등에 우리들은 내 모두를 내어주려고 합니다.

내 자신의 가장 훌륭한 후원자는 바로 ‘나’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내 자신을 어디에 놓아야 할까요? 쓸데없는 것이 내 자신을 놓아야 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하느님 앞에 내 자신을 놓을 수 있도록 제대로 후원할 수 있는 삶을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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