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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2.12.30. 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30 조회수35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2.12.30 주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집회3,2-6.12-14 콜로3,12-21 루카2,41-52

 

 

 

 

 



성가정 공동체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자

이번 주간은 가정 성화 주간입니다.


지난 밤 내린 흰 눈으로 눈꽃 만발한 세상이 장관입니다.

온 누리가 하늘 은총과 축복으로 성화되어

하나 된 성가정 공동체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세상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시고자

하늘이 내려 주신 흰 눈의 선물입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공동체는 믿는 모든 이들 공동체의 원형입니다.
 
이 성가정 공동체를 통해 공동체 삶의 지혜와 방법을 배웁니다.


모든 공동체의 기초가 가정공동체입니다.

가정공동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날 위기는 가정공동체의 붕괴요

높은 자살율과 낮은 출산율이 이를 입증합니다.


얼마 전 어느 형제님과 나눈 대화가 생각납니다.

 

“수없이 자살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아이들 때문에 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낳은 자녀들은 다 출가시키고

늦게 두 아이를 입양하여 손수 친 자녀 이상으로 애정을 쏟아 키우는

참으로 훌륭한 형제님이십니다.


수년간 파란만장한 인고(忍苦)의 삶을 기도와 믿음으로 살아 온,

말 그대로 순교적 삶을 살아 온 형제분입니다.

사실 요즘 같은 어려운 시대에

가정 하나만 잘 꾸려나가도 참으로 위대하고 존경스런 일입니다.

 


“형제님, 성인이 되는 길뿐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고난을 성인이 되는 계기로 삼으십시오.

  아이들 때문에 살았지만 이젠 하느님 때문에 사는 것을 추가하십시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하느님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저도 하느님 때문에 살아갑니다.”

 


하며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이런 어려운 가정공동체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 때문에, 가족들 때문에 온갖 시련을 견뎌내며

용감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성인들입니다.


마리아, 요셉 부부 역시

온갖 시련을 견뎌냈기에 가능했던 성가정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성가정 공동체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첫째, 성가정 공동체는 이상이나 낭만이 아닌 현실입니다.

 


세상에 이상적 유토피아 성가정 공동체는 없습니다.

성가정 공동체를 지향하는 우리 요셉수도공동체도

밖에서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는 낙원 같지만

안에 들어오면 한없이 부족하고 약한 이들이 모여 사는

영적전투 치열한 최전방입니다.


형제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이기적인 나와의 싸움입니다.


궁극적으로 문제는 나한테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요셉, 예수의 성가정 공동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분명 무난하고 순탄한 온실 같은 가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 성가정 공동체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공동체도 없을 것입니다.

 


마리아, 요셉이 겪었을 마음고생은 얼마나 컸겠는 지요.

물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지만

처녀로 예수 아기를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택했을 때의

요셉의 내적 갈등에 이어

이후 마리아 역시 여러모로 마음의 갈등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예수 아이 또한 평범한 아이가 아닌 요즘 말로 하면 문제아였기에

마리아, 요셉 부부도 참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은 모르셨습니까?”

 


예루살렘 순례 중 낙오 된 예수 아이를 사흘 만에 성전에서 발견했을 때의

이 뜬금없는 말에 마리아 요셉 부모는 얼마나 황당했겠는 지요.


그들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평생 화두로 간직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합니다.

 


바로 성가정의 비밀이 여기 있습니다.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조건 반사적 반응(reaction)이 아닌

마음 깊이 담아두는 침묵의 응답(respondence)이

마리아의 위대한 점이자 관상가의 진면목이요

성가정을 이루는 요체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성가정은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입니다.

 


마리아, 요셉, 예수의 가정은

철저히 하느님 중심의 성가정공동체였음이 드러납니다.

예수의 부모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예수 아기를 주님께 바쳤고,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났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성가정 공동체로

부단히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는 우리의 혈연공동체입니다.


사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게 우리의 가족혈연공동체입니다.

 

하여 흔히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물 보다 진한 게 피 이고 피보다 진한 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 게 하느님 믿음이다.’


‘돈’에 한 가지 첨가하면 ‘이념’이 있습니다.


피보다 진한 돈과 이념이요, 돈과 이념 때문에 분열되는

가정공동체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번 대선을 통해 드러난

지역 간, 계층 간, 이념 간, 세대 간의 분열과 갈등이

가정공동체에도 그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아닙니까?

 


이런 돈과 이념의 우상을 무력화 시키는,

세대간, 계층 간, 지역 간 갈등과 분열을 무력화 시키는 유일한 처방은

하느님 중심의 성가정 공동체의 회복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여 우선적인 것이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 체험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하느님의 끝없는 용서를 체험할 때, 사랑을 체험할 때,

우리 역시 지칠 줄 모르는 용서와 사랑이요 성가정 공동체의 건설입니다.

끝없는 용서와 사랑이 평화의 성가정 공동체를 만듭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배우고 실천할 때 평화의 성가정 공동체입니다.

용서와 사랑,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머무름이,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절대적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하느님 찬미와 감사에서 샘솟는

용서와 사랑,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이래서 끊임없이 말씀 공부와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에 충실한

우리 성 요셉 수도공동체의 형제들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응답의 기도와 노래가,

말씀 공부가 성가정 공동체를 만듭니다.


여기서 끊임없이 샘솟는 용서와 사랑, 평화입니다.

억지로의

부모 공경과 부부 간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순종이 아닙니다.


하느님 중심의 사랑만이

집착 없는 무사(無私)한 부부 간, 부모와 자식 간의

참 사랑과 순종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마리아의 집착 없는 사랑의 결과가 예수님의 자발적 순종입니다.

부부든 부모와 자식 간이든 진정 사랑할 때

자발적 순종의 응답임을 깨닫습니다.

 


성가정 공동체는 노부모를 공경하는 공동체입니다.

성가정 공동체의 질(質)은

노부모를, 자녀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납니다.

다음 집회서의 말씀이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 받고,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습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지며 또 장수합니다.


아, 이런 축복을 까맣게 잊고

노인들을 홀대하는 한 성가정 공동체의 실현은 요원합니다.


노부모 모시는 것을 그대로 보고 배우는 자녀들입니다.


노부모 잘 모셨던 이들의 자녀가 잘못되는 경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성가정 공동체의 완성은 없습니다.

이상적 유토피아 성가정 공동체도 없습니다.

 

다만 하루하루 노력해 갈뿐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용서와 사랑, 평화를 체험하며 사랑과 순종의 삶을 살아갈 때 실현되는

성가정 공동체입니다.

 


그러니 성가정 공동체 건설에 불림 받은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 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주님은 이런 덕의 옷을 입고 찬미와 감사의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에게

성가정 공동체를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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