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행복지수 - '13.1.1. 화,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01 조회수405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3.1.1 화요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민수6,22-27 갈라4,4-7 루카2,16-21

 

 

 

 

 



행복지수

 

 

 

 

 


오늘 2013년 새해 첫날

천주의 성모 마리아께서 새해의 휘장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세계 평화의 날인 오늘 하느님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를 통해

온 누리에 평화의 축복을 가득 내려 주십니다.

 


우리 수도형제들은 오늘 새벽 기도 후 신년하례식 중 서로 큰 절을 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 축복을 빌은 후,

“독나발(수도원의 독립과 나의 발전)!”구호를 외치며

서로 향기 그윽한 술 한 잔씩 나누었습니다.


오늘 미사 중 화답송 후렴은 얼마나 흥겨웠는지요.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옵소서.”

 


해마다 부르는 화답송 후렴이지만

부를 때 마다 새롭고 축복 가득 받는 느낌입니다.

오늘만 아니라

일 년 내내 끊임없는 기도로 바쳐도 좋은 참 좋은 기도입니다.


어제에 이어 계속 하늘로부터 내린 흰 눈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부어지는 하느님의 평화와 축복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행복하십니까?

과연 나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을 발견하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위의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소득과 함께 가는 행복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가는 행복입니다.

행복은 사람들 앞에서의 상대평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의 절대평가에서 옵니다.

 

사람들과 비교하는 한 결코 참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께 축복 받은 존재들입니다.

우리 모두의 진짜 이름은 ‘축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라고 세상에 온 우리들입니다.


오늘은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나눕니다.

 

 

 

 

 


행복은 발견입니다.

 

행복을 발견해 갈 때 행복의 성장입니다.


행복도 능력입니다.

행복도 끊임없이 키워가야 합니다.

 


몰라서 불행이요 알면 행복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참 나를 발견할 때 옵니다.


하느님을, 참 나를 잊은 행복은 가짜 행복입니다.

 

자기를 잊고 가짜 행복 속에 살다보니 몸과 마음 망가지는 이들도 많습니다.

재물이나 명예, 지위를 얻고

나를, 건강을 잃어버린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어리석어 불행이요 지혜로우면 행복입니다.


저는 면담할 때 종종 다음과 같은 말로 행복을 확인시키곤 합니다.

 


“하느님 믿음 있고, 마음 건강 있으면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춘 셈입니다.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돈은 다음 문제입니다.

  믿음, 건강, 기쁨만 있으면 이게 진정 부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목자들이 좋은 모범입니다.

베들레헴으로 서둘러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예수 아기를,

행복을 찾아낸 가난한 목자들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참 행복인 예수 아기를 찾아낸 이들은 가난한 목자들뿐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외관상 가난해보이나 실상 내적부자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해도 내적부요로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행복은 고백입니다.

 

하느님을 고백할 때 행복입니다.

우리가 바치는 모든 기도가 다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의 고백, 감사의 고백, 믿음의 고백, 사랑의 고백,

희망의 고백입니다.

고백 아닌 기도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고백이 축복 받은 우리 존재를 깨닫게 합니다.

마음의 눈을 열어주어 곳곳에 널려있는 하느님의 축복을 발견케 해 주는

고백의 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의 가난한 목자들은,

천사가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합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 찬양과 찬미의 고백이 축복의 샘입니다.

 

이런 찬양과 찬미의 사람이 진정 부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찬양과 찬미의 고백의 기도가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평화를 줍니다.


끊임없는 내적 정화와 성화로

주님을 닮은, 축복 받은 원래의 모습이 되어 살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인 우리 마음 안에 당신 아드님의 영을 보내 주시어

우리 또한 “아빠! 아버지!”하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이며,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상속자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종이 되어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자유인의 자녀가 되어 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자유를 살게 하는

찬양과 찬미와 감사의 고백의 기도입니다.

 

 

 

 

 



행복은 관상입니다.

 

관상의 행복, 관상의 축복입니다.

비상한 관상이 아니라 평범한 관상입니다.


우리 모두 관상의 성소에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다음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음이 바로 관상입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주님 사랑을, 주님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는 자가 관상가입니다.


바로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가 의도하는 바입니다.

 


비상한 관상가가 아니라 평소 렉시오 디비나의 생활화로

늘 주님 사랑 안에 사는 평범한 관상가입니다.


성모님은 진정 렉시오 디비나의 대가이자 사랑의 관상가이셨습니다.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목자들이 전한 말에 모두 놀라워할 때

‘그러나 마리아만은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합니다.

 



고결한 영혼은 담아 간직할 수 있는 내면의 크기에 달려있다 합니다.

새삼 성모 마리아의 내면이 얼마나 깊고 큰 고결한 영혼인지 깨닫게 됩니다.

결국은 사랑의 깊이, 사랑의 크기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시편 1장의 다음 대목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여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주님의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이 담아두고 되새기는 사람이,

사랑의 효소로 발효시키는 사람이 진정 관상가입니다.


되새겨 발효될수록 맛있고 향기로운 행복한 삶입니다.

 

 

 

 

 

이렇게 살아있음이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이렇게 살아서 거룩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음이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지금 여기서 행복을 못 살면 내일도 못 삽니다.

 


온통 하느님의 축복과 행복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사제를 통한 주님의 강복이

바로 우리 모두가 축복 받은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 대축일 미사에 참석한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길 빕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길 빕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