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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신앙의 해[49]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02 조회수416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림 : [프랑스] 루르드 로사리오 대성당 외부 

세례자 요한은 모든 이에게 자신이 구세주로 추앙받는 것을 거부했다.
그의 매신저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도록 백성에게 촉구하는
‘광야에서의 울리는 소리’라고만 하면서.
심지어 구세주이신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감히 없다나.
암튼 누구나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다 보면 스스로에 대해 착각하기가 쉬우리라.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자기 성찰로 그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우스개로 ‘공주내지는 백마 병’이라는 게 있다.
사람들이 백마를 탄 왕자를 보면서 너무 좋아 환호하고 사랑의 눈길도 보낸단다.
그런데 왕자를 태운 하얀 말이란 놈이 착시에 착각까지 한다나.
기리는 왕자에게로 향한 열렬한 이의 뜨거운 환호의 몸짓과 눈길을
자신에게 보내는 것으로 말이다.
이런 백마와 같은 착각에 빠지는 사람이 바로 ‘백마 병 환자’라 한다.
공주 몸종도 마찬가지 일게다.
공주 아닌 그녀가 공주인양 수줍음을 떠니까 환장할 노릇이지.
이런 증세를 가진 몸종을 두고 공주병 환자라는 모양이다.

좌우지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간혹 이런 병에 걸리기가 쉽기도 하리라.
주위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님의 위치에 올라 가버릴 때가 있다.
이런 면에서 세례자 요한의 자기 성찰은 우리에게 일러 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하느님만을 믿고자 한 우리 또한 그와 같이 자신을 잘 성찰하여
언제나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요한 1,24-28)
 

거듭거듭 말하거니와 당대의 모든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야말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착각에 빠져있었다.
비록 요한 스스로가 자신은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일 뿐이며
메시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그 많은 고백을 하였을지언정.
 

사람들은 흔히 샛별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별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은 그 이름도 새벽별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별은 그 반대일 수가 있다.
그것은 가장 먼저 뜨는 별이 아니라
가장 나중까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별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게다.
모든 별이 하나둘 사라질 때 어둔 그 밤하늘을 끝까지 지키다가
마침내는 붉은 해에게 자신을 건네주고 스스로는 말없이 사라진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을 매년 6월 24일에 지내고 있다.
이때는 가장 길었던 낮이 짧아지는 그 참이다.
반대로 예수님의 탄생은 긴긴밤 동지에서 낮이 점점 길어지는 때이다.
세례자 요한의 삶도 자신의 탄생이 갖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는 주님께서 오시는 그 길을 앞서 닦아 놓고 자신은 점점 작아진다.
많은 사람이 요한을 따랐기에 스스로를 내세우고 싶은 욕망이 생길만도 한데,
오히려 그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예수님께만 돌려드렸다.
심지어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하면서
스스로 그분께 대한 어떤 낮춤의 끝자락에도 미치지 못함을 고백한다.

많이 알고 있는 이들이 대체로 자신을 낮춘다.
그렇지만 어설프게 알고 있는 이들은 그 반대로 고갤 치켜든다.
되레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란단다.
때로는 못 알아준다고 서운해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알이 찼기에. 하지만 ‘설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숙이고 싶어도 못 숙인다.
알이 차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면서 단지 그분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세례를 베푸는 것도 그분을 맞이하려는 준비란다.
이렇게 요한은 지극히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진솔하게 고백을 마다하지 않았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도
세례자 요한의 겸손의 정신을 본받아 사랑과 봉사로 그분 영광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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