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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형제 사랑 -사랑의 학교- 2013.1.5 주님 공현 전 토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05 조회수361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3.1.5 주님 공현 전 토요일 1요한3,11-21 요한1,43-51

 

 

 

 

 



형제 사랑

 

-사랑의 학교-

 

 

 

 

 


사랑은 구체적입니다.

춥고 배고픔을 따뜻하고 배부르게 하는 사랑입니다.

아침 산책 때 마다 먹다 남은 따뜻한 감자를 손에 쥐고 가면서 체감되는

따뜻함을 통해 ‘사랑도 이런 것이겠구나.’ 실감합니다.

 


사랑을 배워 실천하라고 공동생활입니다.

공동체는 평생 사랑을 배워가야 하는, 죽어야 졸업인 ‘사랑의 학교’입니다.


오늘은 형제사랑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힘든 것이 형제사랑입니다.

해도 해도 늘 제자리의 초보자요 갈수록 자신의 한계와 부족을 느낍니다.

 


고백성사 때의 죄의 고백 내용도 거의 대부분이 형제와의 관계입니다.

거의 반복적으로 짓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죄들입니다.

 


사랑이 이상이라면 공동체는 현실입니다.

사랑의 이상을 실현시키라 주어진 내 삶의 자리 공동체입니다.

 


어제 고백 성사 중 고백 신부님이 형제들에게 읽으라고 권한

경향잡지 1월호 100쪽에 나온 시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어느 하루 일에 지치고 고단하게 돌아 온 늦은 겨울 저녁에 머나 먼 나라

폴란드의 한 시인이 저를 구원해 주었습니다.’라는 말에 이어 소개된

‘타인에 의해 창조된 아름다움 안에(In the Beauty Created by Others’-Adam

Zagajewski-)라는 시였습니다.

 

 

 

 

 


-타인에 의해 창조된 아름다움에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Only in the beauty created

 

by others is there consolation,

 

in the music of others and in other's poems.)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고독이 아편처럼 감미로울지라도.

 

(Only others save us,

 

even though solitude tastes like opium.)

 

 

 

 

 


타인들은 지옥이 아니다.

 

네 일찍이 그들을, 꿈으로 씻겨 진 그들의 맑은 이마를 본다면

 

(The others are not hell,

 

if you see them early, with their foreheads pure, cleansed by dreams.)-

 

 

 

 

 


약간 번역을 개작했습니다만 깊이 공감케 하는 심오한 시입니다.

각자 창조된 고유의 아름다움 안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느님의 꿈으로 씻겨진 맑은 이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봅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이웃 형제들은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요 또 다른 나이기도 합니다.


하여 타인들이 지옥이 아니라 반대로

혼자의 자기(ego)가 지옥임을 깨닫습니다.

 


자기도취, 자기착각, 자기연민의 심연이 지옥입니다.

이런 자기를 자기가 끄집어 내지 못합니다.

이웃이 끄집어 내줘야 하니 이래서 바로 타인이 구원인 것입니다.

 


고독이 아무리 감미로울지라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이래서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입니다.

 

이런 진리를 통감한 사도 요한임이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까닭이 있어, 이유가 있어 ‘… 때문에’ 사랑이 아니라,

기대하는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 무조건적 형제사랑입니다.

 


'살기위하여'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사랑의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형제사랑의 원천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주님사랑과 형제사랑은 함께 갑니다.


형제사랑의 한계에 지칠 때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신 주님의 사랑에

내 사랑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주님사랑만이 지칠 줄 모르는 형제사랑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여 분도 성인도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마라’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도

바로 주님이 형제사랑의 원천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런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닌 구체적 동사의 사랑입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그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실천적 사랑의 빛이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을 말끔히 거둬내

주님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참으로 불완전하고 변질되기 쉽고 마르기 쉬운 우리의 약한 형제사랑이요

자기한계를 절감할 때 마다 저절로 주님을 찾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실이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어제는 요한의 두 제자들이 주님께 왔고,

이어 안드레아의 형인 시몬이,

오늘은 필립보에 이어 나타나엘이 주님께 옵니다.


마치 주님의 거대한 사랑의 자석에 끌려오는 쇠붙이와 같은 제자들입니다.

 


“와서 보시오.”

 


어제는 주님이 두 제자를 당신께 초대했고,

오늘은 필립보가 주저하는 나타나엘을 역시 주님께 초대합니다.


와서 주님을 보고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면서

주님 사랑으로 충전시키라는 말씀입니다.


이래야 형제사랑에 항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사랑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시어

형제사랑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영원한 사랑에 불타는 빛이신 주님,

  저희도 당신 사랑으로 불타게 하시어,

  모든 것 위에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위하여 같은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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