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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절 40 일 성체조배
작성자안성철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07 조회수961 추천수0 반대(0) 신고
 나는 어려서 부터 성체 조배를 좋아했고 사랑 했으며 신심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심적인 기도였다. 내가 처음 성체 조배를 한 것은 국민학교 4 학년 여를 방학 군 단위 전국 사생 대회에 뽑히여 교과서에 실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군에서 선생님 두 분과 친구 1명 4 명이 하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날 갑자기 그 친구는 몹시 아팠다. 군 읍에 성당이 하나 있었는데 여가 시간을 틈 타 나는 친구를 위해 기도 하려고 성 당으로 달려가 제대위 벽 감실 위 예수님이 달려 계신 십자 고상을 바라 보며, 장괘틀 맨 앞줄에 무름을 꿇고 내려다 보시는 예수님께 친구의 아픔을 낳게 해 달라고 주모경, 영광송을 바치고 돌아오니, 친구가 열이 내렸는지 앉아 있었다. 그 뒤로 무사히 작업을 끝 내고 본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상경하여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고, 헤어 졌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친구는 목사로 사목 하다가 고인이 되 버린 사람인데 국민학교 내내 1 등을 하던 수재였다. 
내 신앙의 본질은 내 인생의 전부가 성체 신심 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내가 모 성당 사무장으로 일할때, 교우가  만 이천명이나 되는 성당에 서울 시내서 공소가 둘 이나 되는 대단한 성당이며, 교우들 역시 거센 편이였다. 본당 주임 신부님은 신학, 법학 박사로 주교님 까지 거론 되셨던 학자 신부님 이셨는데 호랑이 신부님 이라고 닉 네임이 따라 다니셨던 소문난 신부님 이셨다 . 나는 사무장 이라기 보다 성령의 심부를 꾼으로서 파견 된 것이다.  나는 당시 현대 건설 직원으로 중동 카타르 왕국으로 내일이면 떠나야 될 사람인데 하필 떠나기 전날 모 성당 사무장으로 봉직을 받은 것이다 . 외국을 포기하고 사무장 직을 택하고 성령 충만 하여, 성령 세미나를 해야 교회가 활성화 될 수 있을 텐데, 주임 신부님, 수녀님, 사목회를 비롯한 기득권의 기성 신자들의 반대가 성령 운동 이라면 고개를 휘졌고 말도 못 붇일 정도였다. 
나는 자매님 몆 분들과 밤 마다 가정 집에 모여 본당에 허락을 맞고 기도 하기 시작 하였다. 그러자 교우들이 하나 둘 늘어 가기 시작 하더니 이젠 가정 집이 모 앉을 정도로 인원이 불어 났다. 나는 본당 일을 보면서 본당 일이 끝나면 환자 집을 방문 하어 기도와 찬미와 전교를 하면서 예수님의 빛을 환히 비추었다. 냉담자 가정이 회두하여 나오고 이방인들이 입교 하기 시작 하며 개신교 신자들까지 개종 할 뿐 더러 사이비 종교인까지 입교 하면서, 한 편으론 성당을 증축 하면서 급기야 본당 주임 신부님 까지 괘 히 승락을 받고 성령 세미나와 산 피정, 은혜의 밤을 분기별로 계속 하게 되 였다.  레지오를 비롯한 많은 신심 단체, 청년 세미나 까지, 하기 휴양 까지도 밤 피정 내지 수도원으로 피정을 통하여 청년 기도회 까지 발족 하여 유일 하게 청년 기도회로 교구에선 둘 밖에 없었고 현재의 청년 성령 기도회가 교구 발전에 밑 거름이 되는데 이바지 한 계기가 되였다. ( 생략 하고 )
본당 기도회를 발족 하고 매년 사순  40 일 철야 기도회를 성체 조배실에서 해 오던 어느날 사순 첫 날 기도회를 하는 도중 주임 신부님이 나를 불러 내어 40 일 철야 기도회를 못하게 하시어 할 수 없이 성체 조배실에서 혼자 40 일 철야 성체 조배를 하게 되는 미증유의 은혜를 받게 되었으며 매일 밤 11 시 부터 새벽 6 시 미사까지 8 시간을  40 일 동안 성체 조배를 하면서 한 번도 졸지 않고 마칠 수 있었던 신앙 체험을 시간이 없어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 드 립 니 다. 시간이 닿는 대로 신앙 체험을 나누겠습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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