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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친구여, 제발 물음표 한번 가져보시게나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10 조회수357 추천수1 반대(0) 신고
신앙 칼럼
 



                      친구여, 제발 물음표 한번 가져보시게나

                                                                                          지요하  |  editor@catholicnews.co.kr


승인 2013.01.10  11:15:19



우리 인생에서 ‘물음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물음표는 신이 인간에게 베풀고 부여한 최고 가치의 선물이다. 물음표는 개인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 발전의 동인(動因)이다. 물음표로부터 탐구가 실현되고 창조 행위들이 성립한다. 그리하여 구도의 길도 확연히 열리게 되고, 마침내 그 물음표 끝에 신도 존재하게 된다.

진정한 물음표는 의심이나 회의를 초월한다. 적극적인 모색과 시도와 수많은 경험들을 가능케 한다. 세상 안에 놓인 무릇 이치들과 지혜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바로 물음표라는 열쇠다. 모든 물음표는 해답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물음표는 그 자체로서 엄청난 보화다.

사람은 물음표를 잘 지닐수록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물음표의 관성화가 필요하다. 물음표를 잘 지니면 무의식 안에서도 물음표가 생명력으로 작동하게 된다. 신앙생활도 사실은 물음표의 끊임없는 작동이다. 물음표를 확연히 지니고, 물음표가 안겨주는 깊은 고뇌의 강을 처절하게 헤어가는 사람일수록 신앙의 농도도 짙다.  

물음표를 갖지 못한 데서 오는 무지

세례를 받자마자 본당 전례분과위원회에 참여하여 열심히 봉사하는 친구가 있다. 미사 때 ‘독서대’ 앞에 서서 성경을 봉독하는 그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고맙고 대견스러우면서도 그가 그 봉사를 통해 과연 신앙의 농도를 얼마나 잘 가꾸어 갈지, 공연한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다.

 

ⓒ한수진 기자

50대와 60대 남성 신자들의 친목모임에 함께 참여하면서 어느 날 그 친구가 자신의 ‘전례봉사’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귀담아들었다. 독서 차례가 오면 집에서 미리 두세 번 성경을 꼭 읽어보고 성당에 간다고 했다. 전례봉사 준비에 최선을 다한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들으며 ‘연습’이라는 단어에 과민해지는 나를 느꼈다. 그 친구가 집에서 미리 독서 연습을 하는 것은 일단 성실한 태도이겠지만, 오로지 연습만이 목적인 것은 아닐까? 라는 물음표가 곤두섰다. 독서대에서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독서를 잘할 수 있도록 연습에만 몰두한 나머지 성경 안의 하느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야릇한 의문이었다.

그런 물음표가 내 뇌리와 마음 안에 있었기에 나는 그 친구가 독서 연습을 하면서 성경 안의 하느님을 잘 느끼고 체득하고 음미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제18대 대선이 끝난 후인 지난해 마지막 금요일, 본당의 5060남성 신자 친목모임에도 그 친구와 함께 자리했다. 그 친구는 소주 두 병이 기본이라며 건강을 과시라도 하듯 자작으로 술잔을 기울이면서 우리 쪽 식탁의 화제를 주도했다. 내가 매주 월요일 서울 ‘여의도 거리미사’와 ‘대한문미사’에 참례해온 사실을 잘 알고 있은 탓인지, 아니면 대선 다음날부터 노란 목도리를 착용하고 다니는 나를 의식한 탓인지 돌연 이상한 말을 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을 비난하는 언사였다.

왜 성직자들이 성직자 본연의 일을 저버리고 거리에 나서느냐는 얘기였다. 성직자들이 성당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자신은 성직자들의 그런 모습이 가장 싫다고 했다.

나는 그저 듣기만 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에 대한 비난과 혐오감만 그에게 있을 뿐 그것과 관련하는 물음표가 아예 존재하지 않음을 확연히 느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언제 어떻게 태동했고 왜 존재하는지, 사제단 신부님들이 왜 그런 고생들을 하는지, 사제단 신부님들의 행동이 그리스도교의 복음정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을 알아볼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왜?’라는 물음표가 애초부터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 대한문 앞에서 월요미사를 봉헌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문양효숙 기자


비난은 성실한 물음표 뒤에

비난을 하고 공격을 하려면 일단 성실한 물음표를 세워놓고 그것에 따라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총체적인 파악을 해보는 것이 옳은 순서일 터였다. 왜 비난과 공격만 있을 뿐 정의구현사제단에 관한 진지한 물음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지,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물음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미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토론을 할 자리가 아니었다. 건강문제 때문에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내가 이미 소주 한 병을 비워 거나해진 그를 상대로 토론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고맙게도 자신이 정의구현사제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혐오하고 비난하는 까닭을 나와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난 국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본연의 일에 매진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해. 국민은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고 본연의 임무가 있잖나. 자기 자리를 지키고 본연의 일에 충실한 것, 그것이 진짜 애국이라는 얘기야.”

주위 친구들 모두 동의를 했고, 나도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종북주술’을 접하지 않은 것에 내심 감사하면서 일단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빙긋이 웃으며 비로소 한마디 했다.

“그럼 박정희도 되게 비애국자네. 왜 군인이 군인 본연의 일을 저버리고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빼앗고 정치를 했을까? 애국자도 아니면서 애국자를 가장했으니 박통도 되게 나쁜 사람이구만.”

이런 내 말에 그 친구가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 친구의 대응을 여기에 기록하지는 않겠다. 그것은 독자 여러분들 각자 상상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 상상 가능한 일이다.


지요하 (막시모, 소설가, 대전교구 태안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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