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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10 조회수673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2년 다해 주님 공현 후 금요일


< 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


복음: 루카 5,12-16






 황금송아지 숭배



     <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

         한 무신론자가 등산하다가 벼랑에 떨어지게 되었는데, 구사일생으로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 살아납니다. 그는 하느님! 저를 구해주시면 이제 하느님을 믿겠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전교하겠습니다.”라고 간절히 애원합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뭐라고 말하셨을까요? “곤경에 처하면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하지.” 그는 아닙니다. 저는 다릅니다. 보십시오. 그토록 당신을 부정하던 제가 벌써 당신을 믿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세상 끝날까지 저의 신앙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한번 믿어 보세요.” 이에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좋다! 널 구해주마, 그 가지를 놓아라.” 그는 뭐요? 가지를 놓으라고요? 제가 미쳤나요? 제 생명줄을 놓다니... 믿을 분이 없네.”

성전에 하느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지 말라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빼내어준 하느님을 금송아지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가끔은, 어쩌면 대부분이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가 만들어놓은 하느님을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하느님이란 내 뜻을 따라주는 하느님인 것입니다.

 

한 번은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는 한 자매님이 성당에 와서 감실 앞에서 한탄하며 통성으로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믿으면 다 들어주시잖아요. 저는 믿어요. 제 기도를 꼭 들어주세요. 제 기도를 안 들어주시면 하느님이 아니에요. 그런 하느님은 안 믿을래요. 당신은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잖아요. ...”

대단한 신앙을 지닌 듯 하지만 저는 좀 걱정스러웠습니다. 물론 믿고 청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비유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도 들어주셨습니다.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이지만 과부가 끈질기게 청하면 귀찮아서라도 들어주시니 지치지 말고 청하라는 의미입니다. 또 자녀들에게 줄 빵을 개에게 줄 수 없다고 그 믿음에 절망을 안겨주시려 할 때, 개가 빵은 못 먹어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지 않느냐며 청했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신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청을 안 들어주시면 안 믿겠다는 말은 아무래도 좋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하느님은 내 청을 꼭 들어주어야만 하는 하느님이란 말처럼 들렸습니다.

 

오늘 기적을 청하는 나병환자의 청하는 말을 분석해봅시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나병환자는 무조건 고쳐달라는 믿음을 지닌 사람들보다도 더 큰 믿음을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단서를 달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지 않으면 자신은 깨끗해 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하시면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완전한 믿음을 지니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사실 무조건 해 달라고 청하는 것보다, 들어주시지 않아도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믿고 받아들일 마음으로 청하는 것이 더 강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청하는 모든 것을 받으셨을까요? 물론 완전한 믿음을 지니셨으니 다 받으셨어야 마땅하겠지만, 사실 예수님도 기도를 이렇게 하셨고 당신 기도는 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들어주시고, 원하시지 않으셔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기도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하셨던 가장 완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가끔 누가 이고 누가 인지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청하는 것을 꼭 들어주어야 한다면 하느님이 갑이 아니라 을이 됩니다. 우리가 주인이 되고 하느님이 종이 되는 것입니다.

전에 어떤 성당을 방문했는데 그 성당에서는 신자들 몇몇이 사제를 모함해 사제가 큰 상처를 받았고, 그러나 결국은 다른 신자들이 그 모함을 알게 되어 그 신자들이 성당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순서상으로 어쨌거나 갑은 사제이고 을은 신자들입니다. 신자들의 요구조건이 들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사제를 바꾸겠다는 생각과, 기도가 들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하느님을 믿지 않겠다는 생각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구원은 왜 내 뜻대로 되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그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받아들이는 한 분에게서부터 시작되었고,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하시는 한 분에게서 완성되었습니다.

 

기름은 물에 섞이지 않습니다. 두 물질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성질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고 우리 안에 흡수될 수 있는 양식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우리 안에 들어와 사심으로써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구원을 위해 우리 마음 안에 그 분이 사실 성전을 짓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은 성별되어 하늘과 같이 깨끗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거룩하시고 그래서 하늘과 같이 깨끗한 곳에만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땅입니다. 우리가 죄가 있는 땅이니까 하느님도 죄를 지어서 우리와 한 몸이 되라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느님처럼 되어야 하는 것이지, 하느님이 우리처럼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도 기도할 때 오늘 나병환자가 한 말을 합하면 더 겸손하고 완전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주님, 제가 바라는 것이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것과 일치하게 하소서. 아멘

 

저희 본당에 부제님이 나셔서 강론을 많이 빼먹었습니다. 게다가 이제 제가 연 피정을 들어갑니다. 그래서 다음 주 토요일까지 복음묵상이 없겠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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