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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아지는 만큼 커지시는 분/신앙의 해[5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11 조회수394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림 : [이탈리아] 파도바의 어떤 성당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실력 있는 사람’도 머리를 숙이리라.
물론 실력 있다고 모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아닐 게다.
머리를 꼿꼿이 하고 다니는 이들도 더러는 있더이다.
실력과 함께 ‘겸손을 갖춘 사람’만이 자신을 낮출 줄 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 있든 표난다.
내면의 빛이 겉에 드러나는 것이기에.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알이 찼기에.
하지만 ‘설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숙이고 싶어도 못 숙인다.
알이 차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학식이 높고 명성이 자자하더라도
고개 숙일 줄을 모른다면 설익은 벼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세례자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떠나갈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일 게다.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그는 알았던 것일까?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의 겸손이 응축된 말씀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루카 7,28).’라고
세례자 요한을 칭찬하셨다.
어느 누가 예수님께 이런 말씀을 들을 수가 있을 것인지?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할 때에
세례자 요한은 떠날 때를 읽고 있었다.
인간적인 이해로 보면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두 분은 경쟁적인 관계일 것이다.
동시대에 태어나신 같은 또래이신 데다가 친척 간이셨고,
두 분 다 자신의 방식으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가르침을 주셨기에.

또한, 인간적 시선으로 비교해 보면,
광야에서 금욕 생활을 하며 세례를 베풀던 요한이 훨씬 더 멋진 구도자처럼 보인다.
먹고 마시며 떠도시던 예수님보다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에게 더 큰 존경을 받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요한은 자신을 포기하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가리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영성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직면하는 중요한 질문은 ‘예수님이냐?’, ‘나냐?’ 하는 물음일 게다.
매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집착 때문에,
우리는 내 안에서 ‘주님’을 몰아내고 그 영광의 자리에 온통 ‘나’를 자리 잡게 한다.
마음 밑바닥에서 예수님과 경쟁을 벌여서 내가 이기고자 한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살다가는 결국은 허무한 ‘영적인 패자’가 되기도 할 게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요한은 자신의 위치를 이처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때와 분별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리 때문에 ‘어정쩡한 삶’을 살고 있는지?
‘저 자리는 내가 가야 한다.
저곳은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다.’라면서 착각하는 경우가 참 많다.
하지만 대게는 모르긴 몰라도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례자 요한은 이 과정을 극복했다.
그러기에 ‘그곳’은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그는 알고 있었고 또 그렇게 외쳤다. 
 

마음을 비운 요한은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라고 선언한다.
실제로 ‘모든 자리’는 주님께서 주셨다.
요한은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였기에 겸손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

겸손한 사람이 큰사람입니다.
조금만 낮추면 ‘큰 그릇’으로 비칠 수 있는데, 가끔은 그것을 외면한다.
겸손을 잃기에 ‘주어진 은총’도 잃는다.
결과는 자리에 ‘연연하는’ 옹졸함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만 한다.
추한 자아로 늙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소유는 그분께서 주셨기에 있다.
지식도, 건강도, 행복도 주셨기에 있는 게다.
이를 안다면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주님께 감사하는 자세가 넓은 마음이다.
큰 그릇의 사람이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작아지는 만큼 커진다는 진리를 터득해야 한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자신의 연륜을 자랑하는 경우가 더러 있더이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자세임에랴.
신앙이 무르익으면 익을수록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예수님은 더욱 커지셔야 하리라.
“그분은 더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자꾸만 작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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