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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
작성자김열우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11 조회수473 추천수0 반대(0) 신고

밝은 대낮에,

중천에 뜬 해를 보며, 태양의 존재를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칠흑의 어둠 속에서,

밝은 태양의 존재를 믿는 것처럼-

그 실재의 형상을 보지 않고서, 그 실존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실존을 보고 체험하였다면

그 누가 무어라 해도, 부인하지 않고 그 믿음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고 체험한 일도 없다면, 더 이상 그것을 고집할 이유나 근거가 없어 믿음을 고수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절대로 무너질 리가 없다는 믿음 때문에, 그 자리에서 머물러 먹고, 잠자며, 일도 합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는 믿음 때문에 터를 닦고, 돌이나 ,대리석으로 집을 짓고, 평생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삶을 구축합니다.

믿음은 우리 삶의 모든 기초가 됩니다.

애착, 열정, 몰두의 터전이 됩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마태복음에,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불법으로 쳐들어가다 의 나쁜 의미를 지닌 침노를, 예수님께서 구태어 쓰신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침노는 믿음, 그리고 열정의 결정체입니다.

목숨까지 걸고, 온 수단과 방법, 체면불구, 불법적 행위까지도 배제하지 않은 열정의 행위입니다.

자신이 들어가야 할, 최선의 처소로 믿기 때문에, 그것을 얻고자 그 무엇도 가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하여 전력투구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열정을 다한 믿음으로 들어가는 곳- 천국입니다.

하느님을 최선의 목표로 삼은 사람들만의 결단과 고집이,

부득이 침노라는 파격적인 행동까지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감히 파격의 행동까지도 주저하지 않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 열정이, 보석처럼 빛나, 하늘을 감동시킨 때문일까요?

사랑은 파격까지도 수용하는 용기일까요?

지성이면 감천이라 는 격언속에서, 그 지성은-

이 과감하고 용감무쌍, 파격적인 사랑의 모습은 아닐까요?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줄 수 없다 라는 모욕을 받아가면서라도, 오로지 자신의 딸을 병마에서 자유롭게 해방시켜주겠다는 열망과,

그 열망을 실현시켜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믿음과,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는 없다는 가나안여인의 고집과 열정이 딸을 낫게 하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예수님의 권능을 앞세우기보다, 너희의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 고 하셨습니다.

 

알 속에 들어있는 병아리는 죽을 힘을 다하여, 알 밖으로 나오려 자신을 둘러싼 알 껍질을 쪼아댑니다.

어미는 알 밖에서 함께 쪼아주어 두터운 알 껍질을 깨고 새 생명이 탄생됩니다.

 

믿음은,

온 마음,

온 뜻,

온 목숨을 다 하여,

오직 하나에 바치는 열정과 몰두, 올인 입니다.

 

야곱은,

하느님과, 자신의 선조들과의 계약과 약속, 축복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계약과 약속의 축복은 장자인, 에사오의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약속과 축복에 대한 믿음과 열정 때문에,

결국 형 에사오의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불법의 방법을 동원하여 가로챘습니다.

그 대가로,

정든 부모의 집을 떠나, 외삼촌의 집에서 20년의 종살이를 겪어내어야 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길, 얍복강 가에서는 하느님의 천사와 겨루며 씨름을 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축복하기 전에는 절대로 천사를 놓아주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형의)발뒤꿈치를 잡은 자 라는 뜻의 이름 야곱 대신,

하느님과 겨루어 이긴 자,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도 얻어냈습니다.

하느님은 복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과, 그 축복을 향한 열정을 품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밤중, 친구가 먼 길에서 왔는데, 그에게 당장 내어 줄 빵이 없었습니다.

이웃에 가서 빵을 좀 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웃은, 온 가족 모두 잠자리에 들었으니, 귀찮게 하지 말고, 날이 밝아진 다음 날, 다시 오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온 반가운 친구의 배고픔을 생각하니, 돌아설 수가 없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려댑니다.

이웃은, 이웃이라는 의리때문이 라기 보다는, 그 강청함을 인하여 -밤새도록 문을 두드리며, 귀찮게 할 것이기 때문에-, 마침내 일어나 그의 청하는 대로 내어 주었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하여 억울한 과부는 매일, 재판장의 집에 가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를 청하였습니다.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한 재판장이었으나, 매일 집 앞에 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과부가 귀찮아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그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유는 빵을 빌리러 온 친구처럼, 끈임없이 청하며 귀찮게 굴어서 였습니다.ㅗ

 

기도는 하느님을 귀찮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겨루어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과 열정, 몰두, 고집입니다.
하느님이시라면, 무엇이든 가능하심을,

자신의 소원을 들어 주실 하느님이심을,
믿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귀찮아 하실 정도로 기도하며, 매달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보통 평범한 방법으로 점잖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여 침노하는 자가 차지하는 곳입니다.

집착과, 고집, 열망, 온 힘을 다하여, all in 하여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오직 하느님만을 위하여,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영원복락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를 열정과 열망을 순간, 순간 잘 간직하고, 굳건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약한 저를 도우소서! 기도드릴 뿐입니다.

저에게 고집과 열정의 믿음을 주옵소서!

힘을 주소서!  그리고,

알 밖의 어미 닭처럼-

Push man처럼-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의 가족을 강권의 은총이끄신 것처럼-

만민을 구원의 대열에 이끄소서!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믿음 역시,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어,

승리하여 다시 일어설 것을 믿고 고집하십니다.

젖먹이 아기가 어머니의 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포기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포기 하지 않는 고집과 열정, 침노, all in입니다.

열망하는 오직 하나인 목적과 그 가치를 위하여-

 

2013년 1월 10일 오전 9시 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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