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 주님 공현 후 토요일 1요한 5,14-21 요한3,22-30

주님과의 관계

-충만한 기쁨-

어제처럼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 요한의 고백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과 요한의 관계만이 아니라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이 말씀은

그대로 우리 수도승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평생수도생활이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우리는 작아져야 하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공현 후 첫 주간 미사 중 계속됐던 1독서는 요한 1서였고,

늘 ‘사랑하는 여러분’으로 시작되었음이 주목됩니다.

이 또한 우리 향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임을 깨닫습니다.

이름 앞에 붙는 ‘사랑하는’이란 호칭이 참 좋습니다.

로마에 있는 한 수도형제로부터 받는 편지 서두는

늘 ‘사랑하는 원장수사님’으로 시작됩니다.

하여 편지를 받게 되면 본능적으로

‘사랑하는’이란 말마디부터 확인하게 됩니다.

사실 저 또한

그 수도형제에게 편지할 때는 꼭 ‘사랑하는…수사님께’로 시작합니다.

이뿐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 편지를 할 때도

저는 ‘존경하는…’, 또는 ‘친애하는…’이란 호칭을 꼭 붙이곤 합니다.

이런 호칭 모두가 친밀감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 대해 묵상하던 중

오래 전 애송했던 ‘하늘과 산’이란 자작시가 떠올랐습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산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하늘이 상징하는바 주님이요

산이 상징하는바 요한이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하늘 배경 있어 아름다운 산이듯,

주님 배경 있어 아름다운 요한이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주님 배경이 없는 요한뿐이라면, 우리 수도승들뿐이라면

참 무의미하고 공허할 것입니다.

새삼 관계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우선적인 게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고 ‘참 나’의 발견에 실현입니다.

주님과의 깊어지는 관계를 통해 점차 이웃과의 관계도 깊어집니다.

도대체 관계없이는 주님을, 나를 알 길이 없습니다.

과연 관계는 의미요 존재다라 정의할 만합니다.

인간 누구나의 근원적 욕구가 만남의 욕구, 관계의 욕구입니다.

관계와의 단절 고립이 바로 자폐현상이요 바로 이 상태가 지옥입니다.

관계를 떠나선, 관계없이는 도저히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입니다.”(1요한5,20bc).

바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 안에서

주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과연 살아갈수록 주님과 깊어지는 관계인지요.

한 집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도 남남으로 살다가 헤어지는 부부도 있듯이

평생을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주님과 남남으로 무관(無關)하게 살다가 수

도원을 떠나는 형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 희망, 사랑 모두 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주님과 깊어지는 관계와 더불어 깊어지는 믿음, 희망, 사랑이요

여기서 샘솟는 영원한 참 기쁨, 참 행복입니다.

바로 이런 기쁨, 이런 행복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다음 요한의 고백은 그대로 우리 수도승들의 고백입니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참 기쁨과 참 겸손의 비밀이 환히 드러납니다.

주님은 커지시고 나는 작아질 때 겸손이요 기쁨이지만,

반대로 나는 커지고 주님은 작아지셔서 내가 주님을 가려버릴 때

바로 이게 교만이요 기쁨도 메말라 버립니다.

우리는 수도원에 커지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작아지려 왔습니다.

점점 커지셔야 할 분은 주님이시며 점점 작아져야 할 사람은 우리들입니다.

여기서 명심할 바는 내가 주님 안에서 점점 작아진다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아짐으로 주님을 닮아 ‘참 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깊게 해 주시고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주님,

  성자를 통하여 저희를 새로이 창조하셨으니,

  주님의 은총을 저희에게 주시어,

  사람이 되신 성자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