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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13 조회수631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1월 13일 주님 세례 축일



After all the people had been baptized
and Jesus also had been baptized and was praying,
heaven was opened and the Holy Spirit descended upon him
in bodily form like a dove.
And a voice came from heaven,
“You are my beloved Son; with you I am well pleased.”
(Lk.3,21-22)


제1독서 이사 42,1-4.6-7
제2독서 사도 10,34-38
복음 루카 3,15-16.21-22

어느 겨울 날, 어떤 집에 불이 났습니다. 그 집의 아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 집에는 중풍으로 꼼짝하지 못하는 연세 많으신 어머니가 누워 계셨기 때문이었지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아들은 불이 난 집 안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누워 계셨던 방에도 또 집 안 어디에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불길이 너무 세져서 포기를 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글쎄 어떻게 된 일까요? 꼼짝 못하고 누워만 계셨던 어머니가 밖에 계신 것입니다. 불길을 피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더니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되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생명의 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우리라는 것이지요. 주님을 믿고 따르는 데에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서,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신없이 바쁘다고 늘 이야기하면서 즐겨보는 드라마는 꼭 챙겨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돈만 있으면 다 되는 것처럼 ‘돈, 돈, 돈’ 하는 것은 뭘까요?

오늘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인간의 세례를 받으셔야 할까요?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인간들 모두가 세례 받아야 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도 받으신 세례, 따라서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 역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이유는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것은 당신이 그 물을 통하여 성화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통해서 그 물이 축성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의 몸이 정화되기 위해서가 아니고 당신이 접촉하시는 그 물을 정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세례 받는 모든 사람들이 정화된 그 물을 통해서 예수님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이고, 이로써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지금의 우리들과 다른 모습으로 보여 주십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우리들과는 달리, 우리들 모두를 위해 당신 자신을 스스로 낮추셨습니다. 물질적인 것들을 먼저 생각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하느님의 아버지의 뜻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 역시 그 모습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니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리지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러한 목소리를 절대로 못들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깁니다. 철저히 나만을 생각하는 삶, 철저히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 중심의 삶을 사는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란 너무 이르지요. 바로 지금이 내게 남아 있는 가장 젊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 하느님의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할 때입니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익숙한 사람과 안 가 본 길을 가는 것이 새로운 것이다(이준익).


독서모임에서 읽고 나눴던 '위대한 개츠비'라는 책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버리면 살리라.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오일러의 정리’를 남긴 위대한 학자인 오일러라는 수학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심한 열병으로 오른쪽 눈 시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왼쪽 눈 역시 백내장으로 점점 시력이 떨어져 결국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지요. 그런데 완전히 실명한 후에도 앞을 정상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보다도 더 왕성한 활동으로 많은 업적을 이룰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오일러는 나머지 눈의 시력마저 잃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후부터 두 눈을 감고 생활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실명한 이후의 삶을 미리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력을 완전히 잃었어도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고 훌륭한 연구결과를 계속해서 발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놀라움이 나옵니다. 사실 저 같으면 아직 시력이 남아 있을 동안에 뭐 하나라도 더 하겠다고 애를 쓸 것 같습니다. 이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그는 달랐습니다. 그는 남아 있는 시력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미래를 준비하지요.

‘버리면 살리라.’는 말도 있지요. 버려야 살 수 있는데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 집착. 그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주님께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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