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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14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14 조회수665 추천수16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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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 - 마르코 1,14-20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이제는 조용히 가슴에 묻어야 할 이태석 신부>

 

 

    연중시기의 첫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들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이렇게 4명을 불러 당신의 첫 제자단을 구성하십니다.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첫 제자단의 모습을 묵상하며 톤즈로 불러주신 하느님의 요청에 기쁘게 응답한 저희 형제 이태석 신부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오늘 1월 14일은 그의 기일이기도 합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톤즈에 두고 온 아이들 때문에 차마 눈을 감지 못하던 이태석 신부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회복되어 톤즈로 돌아가겠다며 입만 열면 ‘톤즈 톤즈’ 하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이태석 신부와 로마에서 동고동락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저는 사제품을 받고 나서 그리고 그는 신학생 신분으로 로마 살레시오 대학교에서 함께 수학을 했습니다. 강의가 없을 때 종종 신학교 기숙사 제 방으로 놀러오곤 했습니다. 함께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어떤 때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유학생활의 고달픔을 달래던 시절이 엊그제 같습니다.

 

    요즘 계속되는 ‘이태석 신드롬’ 앞에서 제 개인적으로 그와 동고동락했던 한 형제로서 약간은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저희와 똑같은 전형적인 한 살레시오 회원이었습니다. 썰렁한 농담도 곧잘 하고 아이들과 토닥토닥 장난도 잘 쳤습니다. 틈만 나면 형제들과 어울려 운동하기를 좋아했고 형제들과 둘러앉아 삼겹살 구워먹는 것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는 더도 덜도 아닌 한 살레시오 회원이었습니다. 저희 살레시오 회원들은 매사에 철저하게도 공동체적입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계획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운동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때로 부족하고, 때로 까칠해지고, 그래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그러나 좀 더 나아지기 위해 가슴을 치던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이태석 신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니고 있었던 가난한 청소년들을 향한 사목적 열정을 참으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휴가 나올 때 마다 이태석 신부의 머릿속은 온통 톤즈 아이들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휴가 기간 내내 톤즈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 사러 여기 저기 참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아이들이 쓸 책걸상이나 가재도구 구입하러 다닐 때 마다 어떻게 하면 품질 좋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을까 같이 발품도 많이 팔았습니다.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 종로 3가...숱하게도 돌아다니며 물건들 세심히 살펴보고 흥정하고 그랬었지요.

 

    세상을 뜨기 5년 전으로 기억됩니다. 정기 휴가차 귀국했을 때 제가 몸담고 있던 대전 수도원에 들렀습니다. 꽤나 지친 얼굴이었습니다. 맑은 공기와 기분전환이 필요할 것 같아 단둘이서 가까운 산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대둔산 수락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 제가 농담 반 호기심 반 삼아 한 가지 물어봤습니다.

 

    “태석아,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너는 의사자격증도 있는데 살레시오회 보다는 차라리 교구나 의료관련 수도회로 입회하지 그랬냐? 그런 쪽으로 갔으면 전공도 살리고 보람도 있고 훨씬 좋았을텐데...”

 

    제 질문에 그는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더군요. 의사로 사는 것보다 아이들하고 같이 사는 것이 더 좋아서 살레시오회에 입회했다. 돈보스코 성인의 삶이 너무 마음에 끌렸고, 형제들과 오순도순, 아이들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그러니 내게 더 이상 그런 말 하지 마라...

 

    톤즈에서 살레시오회 선교사로서 그가 보여준 삶은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교회 선교 정신에 따라 톤즈 아이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고자 다방면에 걸쳐 노력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했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저희 스승이신 돈보스코 성인께서 보셨으면 참으로 기뻐하실 모습을 잘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이제 솔직히 저희는 이태석 신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형제로서 세상 사람들이 그를 조용히 놔뒀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현재 한국 살레시오회 안에는 이태석 신부와 동고동락하고 동문수학했던 형제들을 비롯해서 약 120여명의 동료 수도자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다들 한 마음으로 그의 이른 죽음을 슬퍼하고 있으며 그를 조용히 가슴에 묻어두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톨릭교회와 수도회 전통 안에서 한 수도자가 세상을 떠나면 우선 기도와 침묵 가운데 고인의 삶을 추모하고 조명합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두고 그의 삶과 죽음을 정리합니다. 때로 고인이 행한 영웅적인 사목활동조차도 하느님께 더 많은 칭찬을 받도록 조용히 덮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전통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이 나서서 이태석 신부의 정신과 영성을 추모하고 기리고 계승하겠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수용하기 힘든 고통 한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의 뿌리인 사제요 수도자, 살레시오 회원,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신원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그의 삶 안에서 드라마틱하고 영웅적인 측면만 부각시키며 재단을 만든다, 대대적인 모금활동을 한다, 성역화한다고 기를 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제나 수도자로서의 이태석 신부가 아니라 영웅, 자연인으로서의 이태석을 기리고 기념사업을 벌이겠답니다. 동료 수도자 입장에서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현상은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진 이태석 신부의 명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아진 것입니다. 무척이나 미묘하고 신중해야 되는 부분이기에 아직도 그의 영성, 그의 삶에 대해 저희조차 정확한 진단과 평가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말입니다.

 

    이태석 신부는 다른 어떤 사람이기에 앞서 천주교 살레시오회 소속 수도자요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영상물이나 서적들 안에서는 철저하게도 외면되고 있습니다. 톤즈 살레시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이태석 신부의 면모, 형제들과 함께 일하는 겸손한 수도자로서의 이태석 신부의 모습,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는 예수님 제자로서의 삶은 온데간데없고 영웅적 사회사업가로서의 면모만 강조되고 있음은 이태석 신부의 신원을 크게 잘못 파악한데서 파생된 실수입니다.

 

    저희 살레시오 회원들의 활동은 철저하게도 공동체적이고 또한 겸손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한다며 여기저기 다니면서 떠벌이지 않습니다. 빵 안에 녹아든 누룩처럼 남이 알아주던지 말던지 묵묵히 예수님의 제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는 혈혈단신 홀로 톤즈에 들어가서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지 않았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톤즈에는 살레시오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는 그곳 공동체의 일원으로 일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태석 신부가 떠난 지금 그곳에는 또 다른 살레시오 회원들이 조용히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톤즈의 주민들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영상물이나 서적에는 일부 비참한 실상을 과장되게 구성함을 통해 그곳 주민들의 삶을 폄하하게 되는데, 이는 교회정신, 선교 정신에도 크게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톤즈 주민들은 한국국민들의 불우이웃 돕기 이벤트 대상도 아니고 그곳 톤즈는 한국식 개발의 대상지도 아닙니다. 무분별한 물질적 지원은 오히려 톤즈를 세속주의에 물들게 하고 그곳 주민들을 물질주의의 피해자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이제야 말로 이태석 신부를 조용히 하느님 자비와 섭리의 품 안에 맡겨드릴 때입니다. 과도한 열광과 영웅주의화보다는 그를 위해 침묵 중에 기도할 때이며,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사도적 모범을 조용히 우리 가슴에 묻어야 할 때이며, 그가 못다 한 사랑의 봉사를 우리가 대신 실천할 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 세계 방방곡곡 파견되어 나가 있는 ‘또 다른 이태석 신부’를 기억할 때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이태석신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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