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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14 조회수776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1월 14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



Come after me.
(Mk.1,17)


제1독서 히브 1,1-6
복음 마르 1,14-20

어제는 지난 8일에 사제서품을 받은 새 신부님의 첫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처음으로 본당에서 봉헌하는 미사, 이 첫 미사를 축하해주시기 위해 많은 신자들이 성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저 역시 성소국장으로 축하해주기 위해 이 본당을 찾아갔지요.

첫 미사를 정성껏 봉헌하는 새 신부님과 축하해주기 위해 함께 하시는 신자들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 신부님을 위한 신학생들의 축가 시간에 새 신부님과 새 신부님의 부모님께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신학생들이 감동적으로 노래를 부른 것도 아니었는데, 중간의 멘트가 눈물을 흘릴 만큼 찡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펑펑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리고 이 모습에 뒤에 앉아 계시던 신자들도 울기 시작합니다. 잠깐 동안이지만, 성당 안이 아주 숙연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왜 울었을까요? 새 신부에게 물어보니, 10년 이상을 사제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생활하다가 드디어 그 꿈을 이뤄서 너무 기뻐 울었다고 하더군요. 왜 기뻐서 울었을까요? 아무나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만이 사제가 되어 하느님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제가 된다는 것은 특별한 혜택을 얻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자신의 일보다는 하느님의 일이 먼저가 되어야 하며, 그래서 독신과 순명, 또한 청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기쁨과 함께 무거운 임무가 주어지는 부담되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어떤 분으로부터 왜 여성 사제가 없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떤 시대인데 이것 역시 성차별 아니냐는 것이지요. 아마도 남자만 사제가 되는 것에 큰 불만인가 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남자에게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맞는 일을 맡기신 것이지요.

저 역시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못하는 것을 두고서 하느님께 불평불만을 던지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그림을 못 그린다고, 또 노래를 못 부른다고, 왜 내게는 그런 재능을 안 주셨냐고 따져야 할까요? 아닙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 모두가 받은 사명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제가 될 수 없다는 자체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부 일을 하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따라오너라.”는 그 말 한 마디에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가난에서 벗어나 떼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으로 이것저것 재지 않았습니다. 특히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지요. 오로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주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할 뿐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다른 사람들과 비교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집중하고, 그 사명을 더욱 더 완성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 곧 ‘성소’에 응답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달아나지도, 너무 자주 뒤돌아보지도 말 것. 행복은 결코 쑥스러워할 일도, 미룰 일도 아니니까요.(노자와 하사시)



미사 전, 제의를 입는 새 신부님.



용기있는 우리

어제 휴일을 맞이해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쓰고 있던 중에 갑자기 컴퓨터가 먹통이 된 것입니다. 이것저것 눌러봐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아마도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 몇 개가 충돌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큰 일 났습니다. 쓴 글의 양이 꽤 되었거든요. 그 내용을 다시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가 선택한 길은 ‘컨트롤(Ctrl)-알트(Alt)-델(Del)’키를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컴퓨터를 다시 시작하지 않고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컴퓨터는 제게 경고합니다. ‘지금까지 작업한 내용을 다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이지요. 그래도 저는 ‘예’라는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런 문제의 해결을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요? 복잡하고 힘든 상황이 깨끗하게 정리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요. 그러나 새로운 시작은 앞선 컴퓨터의 경고처럼 위험을 무릅써야지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용기가 내 삶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항상 내 자신을 보다 더 나은 존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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