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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 2013.1.15 화요일 성 마오로 쁠라치도 대축일 종신서원 강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15 조회수568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3.1.15 화요일 성 마오로 쁠라치도 대축일 종신서원 강론

 

집회2,7-13 1코린1,26-31 마르14,28-33

 

 

 


일시: 2013.15(화)오후2시

 

장소: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저에게 이번 2013년 수련원 수도형제들의 연 피정 지도는

참 은혜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하는 마음, 자유로운 마음으로

후배 수도형제들과 함께 한 피정기간이었습니다.


피정 부탁을 받고 떠오른 것은

제가 맨 처음 수련원 연 피정을 맡았던 1992년 1월이었습니다.

그러니 올해가 2013년이니 만 21년 전 일입니다.

 


감회가 새로워 본원에 도착한 날 즉시 ‘소 성당’에 들려

1992년부터 2013년 까지 만 21년 동안

세상을 떠난 수도형제들의 사진을 보며 명단을 확인해 봤습니다.


한 분 한 분 그리운 모습으로 떠올랐습니다.

모두 헤아려 보니 1994년 최 라우렌시오 수사님으로부터 시작하여

2012년 탁 베드로 수사님 까지 무려 스물 두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강물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모든 것이 다 지난다는 진리를 새롭게 깨닫습니다.

과연 ‘앞으로 21년이 지난 후,

현재 수도형제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그때도 나는 살아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바야흐로 21년 세월 흘러

제가 다시 똑같이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지요.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의 기적’입니다.

‘앞길’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어도

지난 21년 동안 ‘뒤안길’을 돌아보니

굽이굽이 ‘하느님 은총의 발자취’였음을 깨닫습니다.

 


이번 강론을 쓰면서 저는 오묘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번처럼 강론의 답이 쉽게 나온 적은 난생 처음입니다.

 


1992년, 제가 종신서원 미사 때 한 강론 제목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였고, 강론 서론 부분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얼마 전 사는 것이 하도 힘들고 답답해서

경험 많은 어느 어른께 여쭤봤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 어른이 하시는 말씀,

 

“그냥 살면 돼”

 

깨달음처럼, 번쩍 어둔 마음을 밝혀 주었습니다.

집착 없이 자유롭게 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다른 어른을 뵙게 될 기회가 있어 또 여쭤봤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가만히 미소를 지으시더니 이윽고 하시는 말씀,

 

“주어진 처지에서 순간순간 충실히 살면 돼”,

 

환상을 버리고 깨어 겸손히 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서론 부분에 이은 강론의 결론 부분입니다.

 

-젊음이 순수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연륜이, 있는 자리가 성숙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찾는 여정에서

누구나 초보자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초발심의 자세가 절실합니다.-

 

이렇게 끝났던 강론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느님을 찾는 구도자들에겐 영원한 물음이요,

바로 이 답을 저는

작년 ‘요셉수도원 설립25주년 기념감사제’를 준비하면서 찾아냈습니다.


답을 찾아 낸 과정 또한 오묘합니다.

노래 준비에 전념하던 어느 수사님이 저에게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원장 수사님은 노래하기 힘드실 텐데 시 하나 잘 준비해서 낭송하십시오.”

 


참 어려운 짐이었습니다.

가벼운 감상이나 감정 토로의

서정시풍(敍情詩風)의 시로썬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았고,

하여 거의 한달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묵상한 결과 탄생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시입니다.

 


제 자신은 물론 수도공동체를 대표한 공동체적 고백 같은 시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이기도 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는,

그대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음을,

이번 강론을 준비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定住)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1년생 작은 나무가

 

이제는 25년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언제나 그 자리에 불암산(佛巖山)이 되어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며 살았습니다.

 

있음 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행복한 산이 되어 살았습니다.

 

이제 25년 연륜과 더불어 내적으로는 장대(長大)한

 

‘하느님의 살아있는 산맥(山脈)’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기도하고 일하며 살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끊임없이 일하면서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모두

 

주님의 전사(戰士)로,

 

주님의 학인(學人)으로,

 

주님의 형제(兄弟)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희에겐 하루하루가 영원(永遠)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욕심을 버리고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누가 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하루하루 살면 됩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우리 수도승 삶의 여정에는 요령도 비약도 첩경의 지름길도 없습니다.


다만

묵묵히,

늘 주님과 함께 형제들과 더불어,

지혜와 힘을 모아,

믿음으로 하루하루 길을 내며 살아가는 일뿐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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