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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광수 신부님의 마르코 복음 묵상 3/ 따라야 할 예수/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신 예수님(마르 7,31-37)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16 조회수546 추천수2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신 예수님(마르 7,31-37)

 

예수님께서 다시 띠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이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복음의 중요 메세지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군중으로부터 따로 분리시키시면서

"에파타", 즉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는 말씀을 듣기 시작하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오늘 복음이 주는 메세지는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서 듣는 대로 되어지는 존재이다.

그리스도교는 혼자 스스로 어떤 깨달음에 이르는 종교가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면서 그 말씀을 따라가는 종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귀먹은 이는 신앙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적어도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을 안다면,

창조주로부터 말씀을 듣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도록 길들여져야 한다.

제대로 듣지 못하면 제대로 말할 수가 없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가 된 것은

그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에 너무나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아무리 권위 있는 가르침을 하셔도 그 가르침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상태요,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다시 띠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만나 유다인의

전통에 대해 논쟁을 하신 다음 띠로와 시돈, 데카포리스 지방을 거쳐 갈릴

래아로 돌아오셨다. 예수님이 두루 거져 돌아오신 지역은 모두 이방인의

지역이다.

 

마르코는 예수님이 이처럼 여러 지방을 다니셨다는 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예수님은 오랫동안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을 다니시면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보시고 경험하셨다는 것이다.

이방인들과 함께 머물면서 그들이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했는지를 직접

보실 수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복음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하느님에 대해서 말을

할 줄 모르는 벙어리이며, 또한 말씀을 들을 줄 모르는 귀머거리이다.

예수님은 당신께 반항하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한테도 복음을 전하셨고,

또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방인들의 지역인 여러 지방을 다니시면서도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한테는 벽도 없고 적도 없다. 모두가 당신이

돌보아야할 당신의 양들일 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 온 만큼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또 하느님의 말씀으로 말을 할 줄 아는가? 많은 신자들이

세속적인 이야기는 많이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는 귀먹고 말을 더듬는

이들이 있다. 왜 그럴까?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겠다는 사람이다. 즉, 그리스도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겠다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말을 

알아들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언어로 말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왜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고 또

복음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가? 아마도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강 요약해 보면 우리의 오랜 전통과 이방인으로 살았던 우리의 관습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그냥 이방인들과 묻혀 살면서 아무런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우리의

게으름 때문일 것이다. 

 

또 입술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은 멀리 떠나 있는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과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헛되이 주님을 섬겨

왔던 잘못된 신앙생활,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데에 급급했던 신앙생활이 우리를 결국 귀먹고 말을 더듬는 반벙어리로

만들지 않았는지 모른다. 한마디로 말씀을 듣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또

들은 그 말씀으로 말하고 생활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의 성숙은 활동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데에

달려 있다고 예수님은 첫 번째 활동에서 이미 선포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교육을 철저히 시키지 않고 활동만을 강조한 결과가

어쩌면 우리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사목자는 먼저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말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리 오랫

동안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귀먹고 말 더듬는 이로 남아 있을 것이다.

 

계속됩니다.

출처: 유광수 신부의 마르코 복음 묵상 3 / 따라야 할 예수 26-29쪽

펴낸곳: 말씀학교

취급처: 성바오로보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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