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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 요한복음 1장 6~18절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19 조회수408 추천수3 반대(0) 신고

 

 

심리학으로 보는 요한복음 / 도반 홍성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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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요한복음 1장 6~18절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주지 않았다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1. 병적인 죄책감
지나친 부끄러움과 자기 학대하는 기도
죄와 약간의 죄책감은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은 모자람이다
부족함이 하느님께 오히려 가까이 가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날 용서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자기 학대가 심한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한다
그런 분들은 치료가 어렵다

지나친 병적인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은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다
하느님께 마음이 안 가 있는 사람들이다
겸손이 아니라 교만한 것이다

죄인이라며 안 빠져나오고 그 안에서 쾌감을 맛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병적인 신앙인이다
자기를 스스로 학대하며 그것을 기도로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건강한 죄책감과 병적인 죄책감은 어떻게 다른가
내 자신을 점검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학대는 다르다
자신을 학대하면서 양심성찰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한 죄책감은
죄를 짓고 부끄러움을 느꼈을 때
하느님이 내가 못 보는 나의 결점을 보여주셨구나 하며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준다
부끄러움은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성령께서 나에게 임하셔서 나의 결점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경우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다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자신의 길로 가고자 하는 결심을 하는 것이 회개이다

반면에 병적인 죄책감은 너 같은 건 죽어도 싸다고 하며
유다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단죄하지 않으셨는데
자기 자신의 죄책감에 자신이 시달렸던 것이다

회개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심에 감사하는 것이다
건강한 죄책감을 가지면 관계회복에 다시 한 번 노력한다

그러나 병적인 죄책감은
심리적으로 자기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많이 걸리고
자기 자신 비난하며 남을 원망하는 말을 많이 한다

고해소는 들어갈 때 짐 지고 들어갔다가 짐을 놓고 나오는 곳이다
미국 심리학자들이 고해소에 대해 많이 오해하고 있다
요즈음 정신과에 오는 사람들이 고해소를 찾는 사람보다 많은 것을
미국 정신과의사들이 걱정하고 있다
이것은 병적인 죄책감 때문이 일어난 것이다

2. 자기기만
자기를 기만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초대교회 때는 신자들이 자유기도를 했다
신자들의 기도가 생기며 타인을 비방하기 시작했다고 스캔들을 만들어서
교회에서 없애버리고 지정해준 기도만 하라고 한 것이

요즈음의 신자들의 기도이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켜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자기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선한 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인정하는 선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 있다
착한 척 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더 많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얘기하며 자기 자신의 가지고 있는 문제를
못 보게 하는 것을 자기기만 전술이라고 얘기한다

남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지만 자기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자기기만이라고 한다
착한 척 하면서 남들이 바뀌기를 바란다
사람은 잘 안 바뀐다
 

안 바뀌는 상대를 그대로 끌어안고 사는 것이 사랑이다
자기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면 자기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도 못 보게 되는 자기기만에 빠진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을 못 받아들인다

심리학에서
타인을 속이려는 자기의 경향을 인정하지 않는 결벽주의자는

이중 기만으로부터 온다
그의 자아는 속임수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완전히 자기를 속이고
세상에서도 공공연히 속이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의 경향성은 자아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그 결과로 생긴 타인을 속이려는 경향을 인식함으로써 정직해질 수 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성령은 빛이다

하느님이 가까이 오시면 빛으로 오시기 때문에
성령의 빛 안에서는 우리의 보잘 것 없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부끄럽다
그래서 자기 기만적인 사람들은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는 것을 싫어한다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죄책감 부끄러움 같은 것도 있다
나에게 좋은 것만 취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이것을 식별해야 한다

심층심리학에서는 탐색, 내면탐색을 한다
상담에 처음 올 때는 남 때문에 온다
내가 불행한 것은 너 때문이야 하고
손가락을 밖으로 향하는데
이때는 한 풀이를 시켜주어야 한다

상담기법 중에 제일 힘든 것이 듣기이다
그 이유는 들어주어야만 풀어내고
그 다음에 자기 안의 문제를 볼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 인정할 때까지
자신이 스스로 깨닫게 한다
10년 후 자기 자신을 볼 때까지, 죽을 때까지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손가락을 밖으로 향하는 한 절대로 안 바뀐다

내가 나를 변화시키려면 내가 나에게 물어봐야 한다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를,,
자기 안의 분노의 원인을 보지 않으면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봐야한다

의식은 생각을 통해 떠돌아다니고 머리 쪽에서만
무의식은 감정으로 나타나는데 주로 가슴 쪽에서 움직인다
사람의 마음은 거기서 거기다
저 사람은 저렇고 나는 안 그렇고 하는 것이 자기기만이다

가톨릭에서의 양심성찰이란 것은 자기 내면세계를 탐색하는 것이다
숨기지 말고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
영성론에서 사람이 행복할 때는 자기 안에 들어가기 힘들고
불편할 때 자기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분노가 일어나면 자기 자신에게
왜 화냈냐고 물어보는 것이 자기 탐색이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을 탐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심리학에서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3. 자아발달이 덜 되었을 때
하느님을 못 받아들인다
Loevinger의 자아발달론에서



1)전사회적 단계
갓난 애기들은 자기 욕구충족을 위해서 운다
아이들이 울었을 때 즉각적인 반응이 오느냐 아니냐에 따라
성장속도가 다르다고 한다
반응이 없으면 무기력해지고 발달장애가 온다고 한다

애기들은 자기 욕구충족에만 관심이 있고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다
이런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도 애기 같은 사람은 오로지 자기만 알고
신앙을 가져도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어렵다

2)공생적 단계(2세)
애기가 자기 엄마에 대해 공생적 관심을 갖고 공생적 단계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3)충동적 단계(3세)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하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자기 안에 일어나는 충동을 절제 못하고 그대로 표현한다
이 단계에 너무 오래 머물면 어른이 되어서도 통제 불능이 된다고 한다


4)자기 보호적 단계
지나친 고통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배운다
깨닫는데 선악구분이 아니라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전 단계의 생각인데 규칙위반이 나쁜 것이 아니라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5)순응적 단계(청소년기)
사회적 인정과 수용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청소년 단계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예민하다
고정관념이 심할 때 이다

사람을 볼 때도 네 편, 내편,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식으로 본다
이 단계의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하느님, 마귀에 대해 관심이 많다(선과 악)
이분법적 시각이 문제다
흑백론과 같다

지나치게 몰아 부치는 것은 사람의 자아발달이 미성숙할 때 그런 시각을 갖는다
매도하는 뒤에는 위험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객관적 소리를 밟아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6)양심적 단계는 너그러움이다
성서 여러 저자들의 특징은 너그러움이다
역사적인 기형들도 그냥 두고 보는 것이다
이 단계부터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아발달단계이다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욕구를 다양한 역동력을 갖고 있는 것
다양한 특성을 인식한다

내면화된 규칙을 갖고 있지만
규칙과 역할은 다면적이며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너그러움의 표현 중에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지만
세계 공동체의 수준은 이 단계에 못 다다르고
아직은 순응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7)자율적 단계
내부지향적인 행동을 버리고 우호성을 참을 줄 알고
내적 갈등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갈등을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측면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시키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정도로 들어오면 현자 소리를 듣는다


8)통합적 단계
극소수의 성인들이다
이 단계는 자아실현을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그 단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자리를 인정해주고 그냥 두는 것이다

종교란 개인적인 쉼터이다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상대가 스스로 개종을 한다면 그것이 진짜 개종이다
그 때 받아들이는 것이 통합적 단계이다
개인적 감정을 종교에 투사시키는 경우는 안 좋다

*자아팽창을 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못 받아들인다

융의 이론에
심리학에서 자아의식이 사회적 역할과 그 힘에 억눌려서
무의식 세계로의 단절이 일어나면
개인적 무의식은 집단적 무의식에 지나친 영향을 받아
권태적 신화적 색채를 띠게 된다

이것이 투사되면 대인관계에 갈등은 평상시 보다 엄청난 강도를 지니게 된다
신화적 의미의 투사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러한 무의식이 투사됨이 없이 안에 머물러
자아의식을 점차 동화되어 가면 의식에 변화가 생겨서
자아실현과 신비화적 결과로의 시도를 과속 귀결하게 된다

신앙생활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주위 사람들이 어느 한 사람을 계속 떠받들어 주면 구세주콤플렉스에 걸린다
자아도취가 마성(魔性)인격을 자기 자신을 신비화한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자기 것 인양 가르치게 된다

너희는 너희 생각을 하느님 것 인양 가르친다는 말씀이 잇듯이
부모를 보양해야지 그냥 코르반이라고만 하면 안된다
강의 강론을 하면서 그냥 자기 생각을 하느님 것 인양 하면 곤란하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
자아팽창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더 크다

끊임없이 기적을 일으킨다고 얘기하는 것은 더 심각하다
자아팽창에 빠지게 되면 성인 도인 느낌 속에서 살게 된다
신부인 경우 자기가 하느님인양 또는 신부와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

*거짓 위신(false prestige)
거짓위신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이 고고함이다
방어기제를 만들어 다른 사람을 안 만난다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이 많다

정말 건강한 사람은 사람 속으로 들어간다
낯 설은 사람 안에도 서슴없이 들어간다
불편해도 그냥 앉아 있을 수 있다

거룩함이 신앙생활로 보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거짓 위신에 빠진 사람들이 내가 너희 보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룩함에 대해 많이 말한다
세속적인인 것이나 거룩함이나
이 두 가지가 내 안에 다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한다
 

완전한 사람은 없다

거룩함이란 완전강박증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지배욕구가 많은 사람들이 이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

자기 자신 안의 자기 느낌으로 부정적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불편함과 부정적인 느낌을 마귀에게 전가하는 것이
이것이 다 마귀의 짓이야 하며 분노의 마귀, 질투의 마귀라 한다

사람은 상처받은 것들이 분노와 불편한 감정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그냥 보면 된다
그 욕구를 풀어주고 화난 것을 풀어주면 되는 것이다
마귀 탓으로 하면 거룩한 척을 하게 된다
마귀들은 소리로 존재하지 이런 분노나 감정들로 나타나지 않는다

*자아무기(ego-weapon)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싶은 사람들이다

종교계 안에서 지나친 거룩한 척하는 사람이다
마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하느님 말씀이 안 먹힌다
바리사이인들은 정말 하느님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자기네들이 율법을 지키는 자체로 다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자리에 있으려 한 것이다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역할을 한다
죄를 짓고도 잘 모른다
들여다보고 깨져야 한다


*답답함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 중에서 판별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답답함이다
내게 있는 욕구를 해소할 수 없을 때
무기력함을 느낄 때
청소년 가출의 이유도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가출과 출가는 비슷하다
답답함의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니다

자족하라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라
자족을 못하면 그 다음부터 불만과 갈등이 발생한다
그리고 분노, 좌절하게 된다
그래서 있는 것에 감사하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주란 그냥 이대로 살 거야 하는 것이다
게으름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 유아기 상태이다

사람은 성장을 해야 되고 성장 욕구를 느꼈을 때 가지게 되는 감정이 답답함이다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도 엄마의 자궁에서 커 가며 답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신앙생활 안에서 계속 성장하면 하느님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어가는 것이 정상이다

한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게으름이란 죄를 짓는 것이다
구약에서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떠나라 하신 것도 안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떠나라
아브라함 마슬로(Abraham Maslow)의 사람의 욕구단계
생리적인 단계는 소유의 단계이다
정서적 단계는 지위와 명예 등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 성공했다고 한다

유혹이란 성공할 만큼 성공했어하는 것이다
재벌들은 정서적 단계에서 끝나는 것이다
영적인 단계는 나눔의 삶이다
또 다른 행복 이것을 참 행복이라 한다

나눔이란 가진 것을 나누는 또 다른 소유양식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떠나라고 하시는 것은
소유의 단계에 머물지 말고 영적인 단계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소유단계에서만 머물면 우상숭배를 하게 된다
우리 집만 사랑해주시는 하느님 우리 집을 돌보아주신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머무는 사람들이 내 것만 중요한 것이다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 것이 정상이다
내 마음 안에서 의문이 일어나는 것은
아 이게 아닌데 하는 답답함, 즉 갈증은 심리적 성장을 위한 것이다

마음 안에 어떤 답답함을 갖고 추구하는 사람이
진짜 건강한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 도반 홍성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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