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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하느님의 사랑- 2012.1.20 연중 제2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20 조회수34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2.1.20 연중 제2주일 이사62,1-5 1코린12,4-11 요한2,1-11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하느님의 사랑-

 

 

 

 

 


결국 자랑할 분은, 찬미드릴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오늘 저희 수도승들은

하느님의 풍성한 사랑을 노래함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연중 제2주일이지만 마치 공현대축일의 연장 같습니다.

 

1.6일 공현 대축일에는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통해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신원이 공적으로 환히 드러났고,

1.13일 주님 세례 축일에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의 예수님의 신원이,

오늘 1.20일 연중 제2주일에는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의 예수님의 위상이 공적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


아드님의 공현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풍성한 사랑입니다.

 


어제 읽은 감동적인 기사를 소개합니다.

아드님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많은 이들을 통해서 들어나는 하느님 사랑의 표징들입니다.

 


어느 사진작가가 몽골을 방문하여

양노원에서 식사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에 첨가한 설명글입니다.

 

 

 


-내가 몽골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으로,

가난한 그들의 모습보다 더 가난한 나를 발견했다는 것을 꼽겠다.

한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

노인들은 찌그러진 그릇에 담긴 수프만으로 한 끼를 때우고 있었다.

그렇게 식사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신비로운 당당함이 엿보였다.

그 까닭은 나중에 알았으니, 그들은 국가에서 양로원에 지원하는 식비를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우리가 받는 이 혜택을 우리 아이들에게 베풀어주세요.

  우리는 얼마 살지 못합니다.

  그저 살던 대로 살다가 죽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살아갈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 달라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우리의 식비를 써주세요.”

 


그렇게 그들은 가난한 한 끼를 선택했고

그들이 거부한 돈은 유치원을 짓는데 쓰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들의 식탁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미래를 비추는듯했다.

그 빛만으로도 그들은 넉넉했다.


나는 그들의 가난한 모습을 소개하려던 생각을 거두었다.

그들의 당당함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고 싶었다(경향1.19(토) 16면).-

 

 

 


참 아름다운 장면 사진에 글이었습니다.


사랑할 때 아름답습니다.

노추가 아닌 노년의 아름다움입니다.


이런 사랑이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이게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지닌 이들이 진정 부자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사랑 없으면 여전히 가난뱅이입니다.

 


부단히 하느님 사랑을 배워 실천할 때 내적으로 부요하고 행복한 삶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배치도 참 적절합니다.

1독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2독서는 성령의 사랑이,

복음은 성자 예수님의 사랑이,

결국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이 환히 계시되고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하느님은 우리에게 빛나는 희망을 선사하십니다.

희망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신문 기사를 읽다가 간혹 ‘출구가 없다’라는 말마디를 대할 때는

가슴이 썰렁함을 느낍니다.

 


밀폐된 지하 주차장에서 출구를 따라 광명천지의 세상에 나왔을 때의

그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맛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이 진정 희망의 출구입니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하느님 희망의 출구를 통해 어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천국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있겠고

여전히 희망의 출구를 찾지 못해 어둠 속에 방황하며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바빌론 유배지의 지옥 같은 처지에서도

희망의 출구를 찾아 하느님 사랑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이사야입니다.


마지막 때 기쁨의 구원 현실을 앞당겨 살고 있는 이사야입니다.


너로 지칭되는 시온이나 예루살렘은 하느님 사랑의 대상인

우리 교회공동체를, 또 믿는 우리 각 개인을 상징합니다.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주실 새 이름으로 불리리라.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있는 왕관이 되리라.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신다.”

 


이게 바로 세례 받아

주님께서 친히 주신 새 이름 영세 명을 지닌 우리의 존엄한 품위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동반자임을 깨달을 때

진정 부자요 행복한 자유인입니다.

 

 

 

 

 



둘째, 성령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성령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사랑의 선물을 주십니다.

 


성령의 효소가 우리를 끊임없이 정화하고 성화하여

향기로운 사랑의 발효인생으로 만듭니다.


성령 없으면 십중팔구 부패인생으로 전락됩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우선적으로 청할 게 성령의 선물입니다.


참 좋은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주십니다.

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성령 안에서 믿음이,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성령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 각자가 받은 은사는 모두가 성령의 선물이니

자랑하거나 교만할 것이 아니라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자랑할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공동선을 위해 쓰라 선물로 주어진 성령이십니다.

경쟁하라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이웃의 부족을 보완하고 채워주라 있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러니 이웃 형제가 받은 성령의 은사를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받은 모든 성령의 은사는 공동자산이니

바로 이게 공동체의 부유함입니다.

 


성령께 마음을 여십시오.

참 좋으신 하느님은 성령을 통해 끊임없이, 아낌없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들을 선사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보다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십니다.

또 성령으로 깨어 눈만 열리면

온통 사랑의 선물이요 기적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셋째, 성자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가나 혼인잔치 기적을 통해 환히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얼마나 신명나는 일인지요.

이래서 살맛나는 인생입니다.


우리의 곤궁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성모님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절로가 아닌,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 있어야 사랑의 기적이요 표징입니다. 오

늘 복음의 성모님의 기도 있어 가나의 기적이었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그대로 아드님 예수님을 향한 성모님의 기도입니다.

이어 성모님은 일꾼들에게 순종을 당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순종으로 준비되었을 때 바야흐로 아드님의 은총의 개입이 시작됩니다.

 


“물독에 물을 채워라.”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물독에 온갖 물을 채우십시오.


물독의 물이 상징하는바 참 다양합니다.

슬픔의 물, 절망의 물, 불안의 물, 미움의 물, 상처의 물, 분노의 물,

내 안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의 물로 채우십시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듯이,

주님은 미사은총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원망은 찬미로,

불평은 감사로, 상처는 치유로, 불안은 평화로, 미움은 사랑으로,

분노는 용서로 바꿔주십니다.

 


무미건조한 맛없는 일상은 신명나는 맛있는 일상으로 바꿔주십니다.

 


다음 말씀이 오늘 복음을 요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표징-영광-믿음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기도로 깨어 눈이 열려 있을 때

무수히 발견되는 일상의 크고 작은 사랑의 표징들이요

표징들을 통해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이고

더불어 증진되는 믿음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읽은 소로우의 시 구절이 생각납니다.

 


“행복이란 한 마리 나비와 같습니다.

  나비는 쫓아다닐수록 더욱 더 당신을 피해 달아납니다.

  그러나 당신이 다른 사물로 관심을 돌리면,

  나비는 날아와 당신의 어깨 위에 살포시 앉을 것입니다.”

 


제 삶의 자리에 충실할 때

바로 지금 여기서 발견되는 행복이요 하느님 사랑의 표징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물 같이 맛없는 허무의 일상을,

포도주처럼 기쁨과 사랑 충만한 맛있는 일상으로 바꿔주십니다.

 


“주님,

  이 주일 미사잔치에서 저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되어,

  영원한 혼인 잔치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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