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순종의 배움터 -순종 예찬- 2013.1.21 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
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3-01-21 | 조회수361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3.1.21 월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292-305) 기념일
히브5,1-10 마르2,18-22
-순종 예찬-
오늘은 ‘순종’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우리의 순종 한 가운데 중심에 자리 잡고 계신 순종의 대사제 예수님이십니다.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요, 우리의 궁극의 순종 역시 아버지의 뜻에의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것이요, 예수님 역시 게세마니 동산에서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자발적 사랑의 순종입니다.
성전 제대 앞에 바닥에 바짝 엎드린 수도형제들의 모습도 그대로 순종의 표지로 보였습니다.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하셨습니다.”
그 고난을 순종의 계기로 삼을 때 내적성숙이요 내면의 아름다움입니다.
결국 우리 삶은 고난을 통해 평생 순종을 배워가는 배움터임을 깨닫습니다. 만일 이런 고난을 순종의 계기로 삼지 않고 내버려 두면 우리의 영육은 원망과 불평, 상처와 스트레스 등으로 병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원조인 대사제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 ‘순종의 길’ 아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런 순종은 그대로 성숙의 표지이자 영성의 표지입니다.
‘삶은 기도이다’란 말과 더불어 ‘삶은 순종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순종인 죽음도 잘 할 수 있어 선종의 죽음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른 순종의 삶이 깊어 갈 때 저절로 분별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도 이런 순종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단식 자체가 목적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라야 되기 때문입니다. 신랑이신 당신과의 혼인잔치 같은 삶을 즐겨야 할 때는 그 삶을 즐겨야지,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순종의 삶입니다. 바로 이런 순종의 삶과 더불어 마련되는 새 부대 같은 마음에 담기는 새 포도주와 같은 은총들입니다.
새 포도주 같은 은총들입니다.
우리의 새 날, 새 마음 부대에 당신의 새 포도주 은총을 가득 담아 주십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