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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법은 하느님과 사람을 위해서/신앙의 해[66]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22 조회수354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바티칸] 로마 성 베드로 광장

많은 교우들이 주일을 ‘의무적인 미사 참여의 날’ 정도로 인식한다.
‘주일 미사’에 불참하면 고해성사를 봐야 하고, 그게 귀찮아 성당에 간단다.
너무 수동적인 자세이다.
주일날 미사 참여가 의무 규정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신앙생활의 깊이는 더하지 않을 게다.

주일날 미사 참여’는 안식일(주일)을 지키는 최소한의 기준이리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 선’이다.
그렇지만 매번 정기적인 미사 참여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님에랴.
물론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시면 주일을 거룩히 지낸 것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법은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법이 법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려면 인간을 위한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여야만 할 게다.
법이 인간을 너무 통제하는 쪽으로만 흘러갈 경우엔
인간이 이 법에 매이기 시작함으로써 오히려 그 법의 노예가 종종 되더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법을 ‘악법’이라며 때때로 개정을 요구한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은 하느님과 인간 사랑에 그 기초를 두신다면서,
이 둘이 본질상 하나임을 가르치셨다.
따라서 안식일 법이 하느님을 위한 법으로 제정되었다면
그것은 동시에 사람을 위한 법이어야 한다.
만일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면 하느님도 안식일을 위하는 꼴이 된다.
모든 법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리고자 만들어졌고
그런 이유로 법 역시나 하느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7-28)’
 

우리는 상대방이 나와의 다름을 종종 참지 못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와 다른 것을 상대방이 틀렸다고 하며 더 이상 소통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화가 생기고 다툼이 인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가 고파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는다.
이를 본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또 따진다.

사랑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할 게다.
그렇지만 상대방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바오로 사도도 코린토 교회 공동체와 관계에서 이를 뼈아프게 경험했다.
그러고는 ‘사랑은 참고 기다리는 것’(1코린 13,4)임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된다.

참는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일 게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을 보면 죽는다고 믿었다.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자신을 죽이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뵐 수 없다는 거다.
자신을 죽이는 고통과 노력 없이는 하느님을 볼 수 없다.
아니 만날 수 없다.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을 뵙고 닮는 일이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야 한다.
비운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들어서실 수 있다.
몸을 최대한 낮추고 보아야 더 많이 그분을 만나볼 수 있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라는 그분 말씀의 근본을 늘 생각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모든 율법은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하시면서,
이 둘이 본질상 하나임을 가르쳐 주셨다.
따라서 안식일 법이 하느님을 위한 법으로 제정되었다면
그것은 동시에 사람을 위한 법이 되어야 한다.
모든 법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자 만들어졌고
그런 이유로 그 법은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존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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