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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혼의 닻 -희망의 여정- 2013.1.22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22 조회수394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3.1.22 연중 제2주간 화요일 히브6,10-20 마르2,23-28

 

 

 

 

 



영혼의 닻

 

-희망의 여정-

 

 

 

 

 


오늘은 ‘희망’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오늘날 참 절실한 화두가 ‘희망’입니다.

많은 이들을 만나다 보면 이구동성의 하소연은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천에서 용은커녕 미꾸라지도 날 수 없다.’는

한 수도형제의 말에 실소(失笑)한 일도 생각납니다.

 


이웃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희망, 꿈, 비전임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희망하는, 희망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살기위하여 희망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도, 마음도 거칠어지고 황폐해 집니다.

희망이 있어야 너그럽고 넉넉합니다.

 


여러분의 희망 상태는 어떻습니까?

 

본능적으로 희망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답답할 때 저절로 눈 들어 하늘을 보는 것은

바로 희망을 찾는 인간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몇 몇 수녀원을 방문했을 때 산으로 에워싸인, 또 아파트로 외워 싸인

환경에서 저절로 눈길 향하는 하늘이요 떠오르는 다음 시편이었습니다.

 

 


“산들을 우러러 눈을 드노라./어데서 구원이 내게 올런고?

 

  구원은 오리라 주님한테서/하늘 땅 만드신 그 임한테서”

 

 


하늘이 상징하는바 구원의 하느님이자 희망입니다.

 

 


“구원의 하느님,…온 땅의 끝이며 머나 먼 바다들의 희망이시여.”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움을 빌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거나이다.”

 


바로 하느님이,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의 희망임을 선포하는

아침 성무일도에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오늘 미사 중 복음 환호송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삶은 희망의 여정입니다.

희망의 하느님을 찾을 때 부단히 자기 초월의, 탈출의 삶이 가능합니다.


히브리서 역시 희망의 중요성을 강력히 설파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단히 희망의 하느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희망이지만 궁극의 희망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을 찾는다 함은 바로 희망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절로 나타나는 희망이 아닙니다.

찾아야 나타나는 하느님처럼 부단히 찾아야 나타나는 희망입니다.

끊임없이 찾지 않으면 하느님도, 희망도 묻혀서 실종입니다.

 


“약속과 맹세,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 희망은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희망의 여정 중인 우리에게,

참 아름다운, 또 한없는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입니다.


희망이, 바로 희망의 하느님이 우리 영혼의 닻이란 말입니다.

 

영혼의 닻인 희망이 사라질 때 영혼의 표류요 실종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려 표류하는 영혼들은, 영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희망은 빛이요 생명이요 문입니다.

희망이 없는 어둠과 절망의 닫힌 공간이 바로 지옥입니다.

 


얼마 전 어느 수녀님의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수녀님, 한분 한분이 섬 같아요.”

 


공동체의 수녀님들이

흡사 바다위에 홀로 떠 있는 섬 같다는 표현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함께 해도 외롭게 섬처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섬이 아니다’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사람은 섬이다’라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래서 희망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영혼의 닻인 희망에 따른 여정일 때

고립된 ‘나’라는 섬에서, 감옥에서 벗어나

초월적 거점에 지평을 확보할 수 있고 내적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더불어 서로간의 연대의식도 깊어집니다.

바로 이런 초월적 거점을 확보했을 때

올바른 분별이요 복음의 예수님이 그 모범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초월적 거점을 확보하심으로

참으로 자유로워진 예수님의 주옥같은 분별의 말씀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사제이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영혼의 닻을 견고케 수리해 주시어

다시 힘차게 희망의 여정에 오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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