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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24 조회수770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1월 22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Even the people who had evil spirits,
whenever they saw him, would fall down
before him and cry out,
"You are the Son of God."
(Mk.3,11)


제1독서 히브 7,25─8,6
복음 마르 3,7-12

언젠가부터 동안(童顔)이란 말이 최고의 유행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조금이라도 더 어려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으며, 심지어 방송에서도 동안대회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한번은 우연히 동안대회를 보게 되었는데, 아들을 스튜디오에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20세인 아들이 40대의 엄마보다 더 늙어 보입니다. 사람들은 이 엄마에게 대단하다고 하면서 피부 관리의 비법 등을 묻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자기 나이대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 분이 어려 보이는 얼굴과 피부 관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을지 또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얼마나 많았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동안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인 ‘늙음’에 대한 자기 방어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늙음은 곧 죽음으로 연결될 수 있는데, 이 세상 안에서 간직하고 있었던 모든 자랑거리가 죽음 앞에서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26세부터 늙어가며, 또 여자는 24세부터 늙어가기 시작한답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넉넉하게 잡아 100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내 인생의 4분의 3이 바로 죽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죽음을 두려워하며, 또 늙음을 두려워해야 할까요? 따라서 겉으로 젊어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젊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모습이 더욱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병자를 고쳐주시고는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시지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전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자신들이 받은 주님의 사랑을 이웃들에게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겉으로 보이는 인기만을 추구하셨다면 굳이 함구령을 내리실 필요가 없지요. 어쩌면 더욱 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널리 알리라고 선전해야 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외적인 부분은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다 줄 뿐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주님의 뜻에 맞게 스스로 행동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피부 관리를 잘하는 것보다는, 내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보다는, 사랑을 많이 실천해서 주님의 곁으로 올라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말을 하는 것보다는, 보이지는 않지만 따뜻한 위로를 전할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채우려는 욕심보다, 주님의 사랑이 늘 부족한 내 마음이 참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길 기도합니다.

 

내 마음에서 희망이 사라질 때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낙심시키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낙심한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이해인).



세상을 밝게 비출 수 있는 빛이 되었으면 합니다.



작게 시작하라

어느 잡지에서 인상 깊은 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실어 봅니다.

한 할머니가 칠십 대에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했다. 젊은이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낸 할머니를 취재하기 위해 세계 각자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할머니에게 물었다.

“어떻게 대륙을 가로지를 생각을 했습니까?”

“오래전부터 그런 꿈을 품었습니까?”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적도 있었죠?”

할머니는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처음부터 대륙을 횡단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달성한 듯해요.”

“무슨 뜻입니까?” 하고 되묻자 할머니는 말했다.

“손자가 코 묻은 돈을 모아 제게 운동화를 선물했습니다. 친구에게 운동화를 자랑하고 싶더군요. 그래서 기쁜 맘으로 새 운동화를 신고 다른 주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친구에게 손자 자랑을 한 뒤 생각했지요. ‘이번에는 저쪽 주에 사는 친구에게 가 보자. 걷다가 무릎이 아프면 택시 타고 돌아오면 되지.’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대륙을 횡단했더군요. 대륙을 가로지르겠다는 남다른 각오가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작은 시작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과연 어떨까요? 작은 것에 충실한 사람이 큰일에도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작은 시작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큰 시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창하고 화려한 것만을 추구하기보다, 작은 것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모습을 통해 또 하나의 역사가 완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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