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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안(開眼)의 여정 -관상과 선교- 2013.1.25 금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25 조회수37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3.1.25 금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사도22,3-16 마르16,15-18

 

 

 

 

 



개안(開眼)의 여정

 

-관상과 선교-

 

 

 

 

 


화답송 후렴이 오늘 말씀을 요약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모든 피조물에게’가 빠져 있습니다.

바로 성 프란체스코처럼

사람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에게

하느님을 알려주라, 하느님을 보여주라, 자유롭게 하라는

복음 선포의 사명입니다.

 


오늘은 ‘개안의 여정’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개안의 여정은

깨달아 눈이 열려가는 깨달음의 여정이자 회개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부단히 ‘마음의 눈’이 열려가는 개안의 여정입니다.

과연 살아갈수록 내 마음의 눈의 시력도 좋아지는 지요.

육안은 어두워지더라도 심안이나 영안만은 계속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내 안에 어른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

어제 강론 때 언급했던 말마디를 떠올리는 순간

‘내 안에 괴물’을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안에 있는 괴물, 또한 나의 부정적 모습이기도 합니다.

 

환히 웃을 때는 천사 같은 얼굴이

분노나 탐욕, 질투, 절망으로 돌변한 얼굴들을 대할 때는

그대로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한 얼굴이 저렇게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

새삼, 마음의 신비, 얼굴의 신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주님을 만나 회심 전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의 광신의 모습이 그대로 괴물 같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해

눈을 떠 참 나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발호하는 내 안의 괴물입니다.


본능적 욕망대로 살다가

재물병(돈), 이성병(여자), 이름병(명예)에 중독되면 그대로 괴물로 변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원의 유일한 출구는 하느님뿐입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은

나의 생명, 나의 희망, 나의 기쁨, 나의 행복, 나의 평화라는 고백은

바로 하느님이 나의 유일한 구원의 출구라는 고백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찾는 갈망은 바로 참 나가 되려는 갈망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 괴물은 참 나로 변모되어

진정한 기쁨과 평화, 행복을 맛봅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은총의 선물입니다.


주님이 주도권을 잡고 사울을 찾으십니다.

주님과 사울이 만남이 참 극적이고 긴박합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어 주님의 은총으로 하나니아스에 인도되어 눈을 뜨게 되는 사울입니다.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주님을 만나 눈 뜨면 사람이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해 눈 뜨지 못하면 괴물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으로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림으로

교회를 박해하던 괴물 같던 사울은

하느님이 선택하신 도구가, '참 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와 같이 주님과 비상한 만남만이 아닌

매일의 미사와 성무일도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으로 부단히 주님을 만나

마음의 눈을 뜨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관상적 일치가

선교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1독서의 주제가 주님과 만남의 관상이라면 복음의 주제는 선교입니다.

관상과 선교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개안의 여정은 관상과 선교의 리듬에 따라 전개됨을 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선교로 열매 맺어야 비로소 관상의 완성입니다.

말로가 아닌 주님과의 관상적 일치의 삶 자체가 선교요,

이보다 더 좋은 선교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그 삶을 통해 사랑의 하느님이 그대로 드러나는

존재론적 복음 선포입니다.


그러니 사도 바오로처럼 참 관상가는 모두 선교사일수 뿐이 없습니다.


아침 성무일도 때 사도행전 독서의 다음 대목이 의미심장했습니다.

 

“다시 너를 이방인들에게 보내어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느님께로 돌아가게 하겠다.”

(사도26,17b-18a).

 


마음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느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복음 선포의 본령임을 깨닫습니다.

 


먼저 내가 주님과 만남의 관상으로 눈을 떠야

진정한 선교사가 되어 이웃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음을 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 관상시간에 당신과 만남으로

우리 눈을 열어주시어 당신의 선교사로 각자 삶의 현장에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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