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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지, 요양] 하느님의 나라와 이리의 나라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26 조회수480 추천수0 반대(0) 신고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카 10,1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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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는 힘없는 양떼들을 잔인하게 대한다(마태 10,16; 사도 20,29). 무서워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써 "이리 앞의 양"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이리는 야행성 동물이어서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먹이를 찾아 나선다. 성경 저자들은 이리에 비유되는 악인들이나 악한 제도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끔찍함과 잔인함을 극대화하고 있다.이기적인 종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부정직한 대신들과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교사들도 이러한 이리의 습성을 닮았다고 표현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적대적인 세상 자체도 이리와 같다(루가 10, 3).   <참조 ;  자료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여기에서의 '일꾼'은 '이리'로부터 양떼를 지키는 주님의 일꾼이다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일꾼은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세상적인 일꾼과 다른 것이 분명합니다.

다음의 예수님 말씀에는 삯꾼이 나옵니다. 삯꾼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요한 10, 12 - 13 참조)

상기의 '이리'에 대한 자료에서 '이리의 습성'을 잠시 살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꾼을 말씀하시면서 이리와 관련하여 일꾼과 연계를 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일꾼은 틀림없이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억지로 삯꾼과 구별하려고 일꾼을 대비하는게 아닌 것입니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하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주인에게서 오는 일꾼은 주님의 일꾼이며 세상적인 삯꾼은 아니다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삯꾼을 입에 담으시고 일꾼을 입에 담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일꾼과 세상적인 삯꾼은 분명히 틀림이 있는 것입니다.

삯꾼은 이리의 습성에서 볼 때, [ 야행성 동물이어서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먹이를 찾아 나선다] 했습니다. 삯꾼은 이중성의 인격체입니다. 낮에는 선한 사람이지만 밤에는 달라집니다. 포악해 집니다. 남들이 보는 낮에는 친절한 듯이 하지만 남들이 보지 않는 밤이면 "이리는 힘없는 양떼들을 잔인하게 대합니다" 이중적인 인격체입니다.

이처럼 '이리와 같은 요양, 복지사'가 있습니다. 업무 지향적이기 때문에 업무 중심으로 월급을 수령하는 삯꾼입니다. 돈을 버는 업무 중심이지,약한 양떼를 배려해 주며 따뜻하게 돌보는 인간 중심이 아닙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하지만 삯꾼은 일이 먼저입니다.

주어진 일을 충분히 끝내기 위해 일을 빨리 서두르다 보면 약한 양떼들은 고통의 시련을 겪기 마련입니다.일 중심의 그 마음은 포악하고 하는 짓은 잔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낮에는 숨었다가 밤에만 움직이는 야행성의 이중적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약한 양떼들에게는 사나운 짐승이라서 친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좋게 평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악의 토양'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악이 저지르는 일에 대하여 다른 악한 삯꾼인 사회복지사도 그 짓들을 서로 공감하기 때문에 '악의 토양'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인간 중심의 일꾼인 선한 사회복지사는 '사랑의 토양'입니다. 이런 분들의 따뜻한 인간미에 의해 '사랑의 토양'이 일구어 집니다.

악의 토양이 힘을 써서 사랑의 토양이 허물어지면 사탄의 나라입니다. 악의 토양(나라)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랑의 토양'이 힘을 발휘해서 '악의 토양'이 힘을 못쓰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온 것입니다. 사랑의 토양이 하느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일꾼, 하느님의 일꾼들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악이 악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어떤 토양에서 사랑이 자라나고 있다면 악은 사랑에 의해 물러나기 때문에 어떤 토양이 '사랑의 토양'이라면 그것은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온 것이다고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라는 일 중심의 삯꾼인 이리 떼가 설치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화는 인간 중심인 주님의 일꾼들에 의해 사랑으로 평화가 있는 곳입니다. 착각에 빠지면 사탄(악의 토양)의 그 정체를 식별하지 못합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말씀합니다. 밭(토양)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일꾼은, "나는 너희를 보낸다" 와 같이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평화를 이룹니다. 악의 토양을 사랑의 토양으로 바꾸어 양떼들의 평화를 지키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은 악으로 기울여져 있습니다. 악이 세상의 권세를 잡고 악한 삯꾼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악한 삯꾼의 편입니다. 권세를 쥔 악(세상)은 인간 중심의 사랑보다 일 중심의 악한 삯꾼과 그 악한 짓에서 내밀하게 서로 공감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예수님의 일꾼(양)이 그리스도의 양떼를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 밭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하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리의 나라를 하느님의 나라로 착각하면 안 된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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