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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선교소명과 성령님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26 조회수850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3주일


<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


복음: 루카 1,1-4;4,14-21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이 솟게 함


카스텔로(Castello, Valerio) 작, 파리 루브르 박물관


     < 선교소명과 성령님 >

       휴렌 박사의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이란 책이 있는데 일상의 모든 불균형과 문제를 해결하는 하와이인들의 전통적인 문제 해결법에 관한 내용의 책입니다.

호오포노포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대목은 하와이 주립 종합 병원 내 정신과 병동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휴렌 박사는 1984년부터 1987년까지 강도 높은 보안이 필요한 통제 구역 병동에서 주당 20시간씩 임상심리학자로 근무했습니다. 1984년 휴 렌 박사가 부임했을 당시, 통제 구역에 격리 수용된 환자들은 대부분 살인, 강간, 마약, 폭력 전과범들이었습니다. 병동 내에서의 폭행 사태를 막기 위해 금속 팔찌와 족쇄 착용이 일상화되어 있었음에도 환자들 사이의 폭행이나 환자들이 직원을 폭행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 병동을 통과할 때마다 환자들이 덤벼들까 무서워 벽에 등을 붙이고 지나갈 정도였고, 정신분석의들은 한 달을 못 버티고 그만두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3년 뒤인 1987, 휴렌 박사가 병원을 떠날 무렵, 병동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져 있었을까요? 병동에는 격리실이 사라지고 환자들이 착용하던 팔찌와 족쇄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환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이 허용되고 독한 약을 먹었던 사람들도 복용하는 약이 줄어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퇴원하는 환자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필요한 인원보다 직원들이 남아돌게 되었는데도 그 모든 직원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일을 하러 나왔습니다. 그 병동은 차차 존재 이유가 사라져 현재는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휴렌 박사가 근무했던 이 정신병동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 비밀이 바로 호오포노포노입니다. 고대 하와이인들은 호오포노포노라는 역동적인 영적 접근법을 인생에 있어서 과거와 현재의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내려놓는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호오(Ho’o)’는 하와이 말로 원인, ‘포노포노(Ponopono)’완벽함을 의미합니다. 즉 하와이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문제해결법으로 요약할 수 있는 호오포노포노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으로 그것을 스스로 바로잡다혹은 오류를 정정하다를 뜻합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은 죄가 만들어낸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혹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다면 바로 이 세상이 고통 없는 에덴동산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미사를 시작할 때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모든 남의 탓을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요!”라며 세 번 가슴을 치는 행위를 하며 나부터 반성하고 깨끗해지려는 노력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호오포노포노도 내 자신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기억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의 원인이기 때문에, 내 자신의 모든 기억들, 즉 판단, 분노, , 짜증 같은 기억들과 같은 불완전한 요소들을 정화하여 ‘0’의 상태, Zero로 만들면 그 안에 영적인 것이 오염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휴렌 박사는 왜 자신이 이런 험한 곳에 와서 일을 하게 되었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이는 자신 안에 온갖 어지러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먼저 자신부터 정화해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한 번도 병동의 환자들을 진료하거나 심리치료를 하지 않았습니다. 환자 사례 연구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각 환자들의 차트를 보면서 일상적으로 이렇게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즉 나의 더러움 때문이 여러분들이 이런 상태가 된 것에 대해 미안하고, 그래서 용서해 주시고, 또 내 안의 이런 모습을 보게 해 주어서 고맙고, 그래서 자신을 변하게 해 주는 당신들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변하니 세상이 변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을 따듯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이 변하기를 원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뜨거운 태양이 되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을 정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깨끗한 5만 원권 지폐를 들고 아무 조건 없이 원하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하면 거부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지폐를 마구 구겨서 그것을 다시 들고 가지고 싶은 사람 있느냐고 묻는다면 여러분들은 어쩌시겠습니까? 물론 구겨진 것도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가끔은 똑같은 존엄성을 지닌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휴렌 박사가 그 정신병동에 있는 범죄자들을 똑같이 귀한 인간으로 여겨주지 않았다면 그들이 변화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안에 있는 관념들이고 우리는 이것 또한 판단의 죄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판단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니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정화하면 나뿐만 아니라 세상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미국 고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이 새 학년 반을 편성하여 담임을 정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반은 머리가 더 똑똑한 아이들만 모아놓은 반이었고 나머지는 보통 아이들로 이루어진 반이었습니다. 1년이 지났는데 역시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모여 있는 반의 아이들 성적이 다른 반들보다 월등히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담임선생님을 불러 1년 동안 고생했다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담임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원래 머리가 좋은 아이들을 모아놓으셨기 때문에 점수가 잘 나온 것이지 제가 특별히 잘 한 것은 없어요.”

교장선생님은 그 때야 솔직히 말해 주었습니다.

아닙니다. 그 땐 제가 거짓말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고 사실은 모든 반이 같은 수준의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더 머리 좋고 열심한 학생이라고 믿었던 선생님 덕에 정말로 아이들이 변화하였습니다. 다른 반 선생님들은 이 반도 별다르지 않겠지!’라고 판단하여 그것밖에 아이들이 변화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믿어주면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에 김민경씨가 쓴 [괜찮아, 엄마는 널 믿어]라는 책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게임에 빠져 자퇴까지 결심했던 아이를 끝까지 믿어주어 고등학교 전교1, 연세대 4년 장학생으로 키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김민경씨는 아이는 엄마가 믿는 만큼 자란다.’는 것을 굳게 믿어왔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죄(관념, 기억, 자아 등 뭐라 불러도 상관없음)가 사라지면 오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휴렌 박사 또한 자신이 먼저 정화되어 그들에게 사랑을 준다면 그들이 변화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믿음이 자신을 정화한 사람이 성령을 통하여 얻게 되는 열매임은 알고 있지 못합니다. 자신만 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정화된 자신을 통하여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주의 존재 에너지, 하느님의 영의 힘이신 것입니다. 자동차기 기름 없이 갈 수 없는 것처럼, 기름통만 비워진다고 변화의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조차도 우리를 해방시키러 오셨지만 아버지로부터 성령의 힘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돌아오셨다는 말일까요? 바로 광야에서 40일 간 단식하며 마귀의 유혹에 싸워 이긴 후에 성령의 힘을 지니고 돌아오신 것입니다. 휴렌 박사가 말하는 기억을 정화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죄를 씻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단순히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하듯이 하느님은 하늘에 사시기 때문에 죄를 의미하는 을 정화하여 자신의 마음을 하늘처럼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오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라는 이사야서를 인용하신 것은 가난하고 종살이하는 이들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구원자가 바로 성령의 기름으로 충만한 당신이시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너지인 동시에 사랑이십니다. 운전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기름통에 기름을 채우는 것처럼, 사랑하고 해방시키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만 성령의 에너지를 주십니다. 따라서 이웃을 사랑하려는 소명을 깨달은 자야만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구약의 모세에 적용시켜 볼까요? 모세도 억압받는 백성을 해방시킬 소명을 받습니다. 그 소명을 받을 때 먼저 자신을 정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언제 모세가 자신을 정화하였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자신의 신을 벗는 장면입니다. 하느님은 거룩한 분으로서 깨끗하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해방의 소명을 주시는데 당연히 성령님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 성령님은 무엇일까요? 성령님은 보통 협조자(파라클레토스)’라고 합니다. ‘파라이라는 뜻이고, ‘클레토스불러 세운 사람을 의미합니다. 항상 모세 옆에서 기적을 일으키고, 홍해도 가르고, 바위에서 물도 나오게 했던 모세의 힘이었던 파라클레토스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느님께서 항상 지니고 다니라고 하던 지팡이인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모세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라거나, 그들 탓이라고 생각했다면 부르심을 받지도, 죄가 씻기지도, 성령의 지팡이를 가질 수도, 하늘의 책에 기록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은 사랑하려는 소명을 깨달은 이에게 주어집니다. 휴렌 박사도 결국 정신병동에 갇힌 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정화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당연히 이웃사랑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당신께서 하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유일한 계명이고 구원에 직결되는 계명입니다. 해방자 모세에게 성령의 지팡이를 주시는 것이 당연했듯이, 사랑하려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령의 힘을 필요로 하는 우리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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