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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27 조회수631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1월 27일 연중 제3주일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bring glad tiding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liberty to captives
and recovery of sight to the bli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and to proclaim a year acceptable to the Lord.
(Lk4,18-19)



제1독서 느헤 8,2-4ㄱ.5-6.8-10
제2독서 1코린 12,12-30
복음 루카 1,1-4; 4,14-21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요즘 좋은 일 있으신가봐? 피부도 좋아지고요,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

이 말을 여러분이 듣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거짓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서 화를 내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빈말이라 할지라도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저보다 더 피부도 좋은 것 같고, 더 젊어보이시는데요?”

그렇다면 “당신 같은 사람이 정말 싫어.”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상대방의 단점을 떠올리면서 “나 역시 당신이 싫어.”라고 반응할 것입니다.

이처럼 호의를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호의를 되갚으려고 하고, 또 반대로 악의를 받으면 어떻게든 악의로 되갚으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받으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악의, 미움, 다툼 등의 부정적인 말과 행동인가요? 아닙니다. 누구나 선의, 사랑, 용서 등의 긍정적인 말과 행동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내가 듣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내가 먼저 받아야 나도 베풀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베풀지 못하는 삶, 나누지 못하는 사랑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각박하다고 또 어렵고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나’ 때문이 아닐까요?

본당을 새롭게 신축하기 위해 애썼던 신부님 한 분이 기억납니다. 그 신부님께서는 이곳저곳 본당을 다니시며 모금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후원을 약속하신 분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입니다. 직접 땄다는 고사리도 보내고, 감귤이나 뮤지컬 티켓도 보내시고……. 조금이라도 건축금을 모으기 위해 선물을 보내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후원을 약속만 하고 잊으셨던 분들이 미안해서 밀린 후원금까지 다 내신다고 하더군요. 먼저 주셨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주고 나누는데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받고 빼앗는 데에 온 힘을 쏟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시지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지배하러 이 땅에 오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의 것을 빼앗겠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고 나누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시지요. 바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곧바로 주님께서 오신 그 목적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 바로 주고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주님의 거룩한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어떠한가요?

 

결점을 보고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친구다(윌머 애스키나스).


예비신학교 입학 면접 중. 모두가 그 사제의 꿈을 잃지 않기를...



내가 축복과 행복을 받는 이유는?

우리는 자신이 불행할 경우 운명을 탓하고는 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 태어났을까?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나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을까? 나는 왜.....’ 그러면서 하느님께 불평불만을 던집니다.

그런데 내가 누리고 있는 축복이나 행복에 대해서는 전혀 운명을 운운하지 않지요. 그러한 것들은 아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건강한 것, 하루를 무사히 잘 보낸 것, 아무런 사고 없이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 등등 내가 누리고 있는 축복과 행복은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로 생각할 뿐입니다.

하지만 불행한 운명을 탓한다면, 마찬가지로 행복한 운명 역시 탓해야 하지 않을까요? 즉, 나의 불행에만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리는 행복에도 그 이유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니 이러한 질문을 하느님께 드릴 수가 있겠네요.

“하느님, 정말로 이상해요. 왜 저는 이러한 축복과 행복을 받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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