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랑의 실천이 좋은 땅이라는 증거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29 조회수661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3주간 수요일


<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복음: 마르코 4,1-20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1661)


     < 사랑의 실천이 좋은 땅이라는 증거 >

            제가 일반대학교 다닐 때 어떤 수녀님이 저에게 오시더니 당신들 수도회를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이유인 즉, 근래에 당신 꿈에 제가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예수님께서 저를 부르고 계시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수녀님 정도 되면 그렇게 하느님께서 꿈을 통해서 말씀을 계시해 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수도회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몇 년이 흘러 제가 교구 신학생으로 어떤 행사에 참여했을 때 그 수녀님이 보이기에 제가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고 기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수녀님은 어디에 들어갔느냐고 물으셨고, 저는 교구사제로 지원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수녀님은 인사도 없이 휙 돌아서서 가버리셨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 수녀님은 제가 당신 수도회에 들어오는 것만을 원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도회의 사제이건, 교구사제이건 함께 기뻐해 주셔야 옳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제가 되어서는 성체를 영할 때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느니, 예수님이나 성모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많은 분들이 당신들을 인정받기 위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것이 신앙의 척도가 아님을 말씀드렸습니다. 신앙의 척도는 이상한 신비체험을 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기적을 행하는데도 있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어떤 기적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말씀이 그 사람 안에서 실천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을 받아들이는 땅은 을 제외하고는 자갈밭, 가시밭, 좋은 땅이 다 말씀을 잘 받아들입니다. 특히 자갈밭이 말씀의 뜨거움을 느끼지는 하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금방 시들어버리는 그런 땅을 상징합니다. 좋은 땅이란 갑자기 특별한 체험을 하는 땅이 아니라 그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 행동으로 그 열매를 맺는 땅입니다.

 

이런 것은 한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참 교회를 알아보는데도 해당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도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이기 때문입니다. 참 교회를 알아보는 방법은 그 땅이 얼마나 말씀을 잘 받아들였는가를 보면 됩니다. 안수를 할 때 뒤로 넘어가거나, 혹은 이상한 언어로 말을 하거나, 치유의 기적 등을 일으키는 것이 참 교회의 증거가 아닙니다. 이것은 돌밭 위에 떨어진 씨앗과 같은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증거는 그 말씀이 실천의 열매를 얼마나 맺느냐에 있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유일한 계명을 주셨습니다. 바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든 사랑의 실천이 잘되는 교회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비옥한 땅이고 참 신부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도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당신께 해 준 것이라는 기준으로 우리가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한번은 개신교의 가이드가 바티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쫓아가며 엿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저 보이는 큰 성당이 바티칸 대성당입니다. 면죄부를 팔아서 지은 성당이죠. 교회의 타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광장은 마치 수레바퀴처럼 보이는데 이것이 교회가 이방신인 태양신을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인들의 종교에서 쓰던 것인데 남자의 성기를 상징합니다. 이것들을 보면 천주교가 얼마나 이교들과의 혼합주의가 심한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벨리스크 맨 위에 보면 십자가가 있고 그 십자가 안에는 헬레나 성녀가 가져온 그리스도의 성 십자가 조각이 들어있습니다. 이교도의 것이 맞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쓸모없는 땅이었고 이교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인 땅은 동산이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방 종교를 완전히 마귀 취급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이전에도 어느 정도는 철학이나 각 종교를 통해 당신 진리를 드러내 보이고 계셨습니다. 저는 불교의 교리를 보면서 가톨릭 영성과 너무나 닮아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놀라곤 합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오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보면, 어느 종교가 더 좋은 종교이냐는 끝나지 않는 과거의 역사나 서로의 교리의 정당성을 따지는 것보다도 그 종교 창시자의 말씀을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가톨릭교회가 다른 종교보다 더 사랑실천에 대해 미약하다면 저희 교회도 더 이상 좋은 땅이 아니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각자의 종교의 우월성을 말하려 할 때는 여러 말이 필요 없습니다. 사랑의 실천만이 그 땅의 비옥함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큰 가르침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어느 교회가 사랑을 가장 많이 실천하는지 정확한 데이터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랑 실천은 또한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명령을 또한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 우리나라 교회의 객관적인 사랑실천 통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가톨릭교회가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실천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2. 10. 28일자 1188호에 가톨릭 신자들 나눔 활동 으뜸!’이라는 제목으로 기분 좋은 기사가 실려서 함께 나눕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종교인비종교인을 통털어 기부와 자원봉사 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름다운재단(이사장 예종석)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제12회 국제 기부문화 심포지엄에서 강철희(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누가 이웃을 돌보는가?' 발표를 통해 "천주교 신자들의 기부 참여율은 68%(2011), 개신교(61%)불교(60%) 신자보다 높다"고 밝혔다.

강 교수에 따르면, 1인당 기부금액 또한 천주교 신자는 371100원으로, 개신교(213400)와 불교(106000)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또 천주교 신자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49%, 기독교(34%)불교(27%) 신자보다 높았다.

자원봉사 시간 역시 천주교 신자들은 36.5시간, 불교 18.1시간, 개신교 13.9시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같은 말씀이라도 - 불교도 자비와 사랑을 강조합니다 - 어느 땅에 뿌려지느냐에 따라서 다른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좋은 땅은 사랑의 실천으로써 증명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서도 말씀을 들었다면 곧 이어 눈에 보이는 변화가 일어나도록 해야겠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