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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 --- 요한복음 6,22~59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31 조회수443 추천수2 반대(0) 신고

요한복음 6,22~59

생명의 빵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그들이 다시 물었다.“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그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중에
아래와 같은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 말씀 중에,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는 말을
너무 지나치게 곧이곧대로 들어 자기가 먹고 배설하는 것에 대해
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도 먹고 배설하는 것이 안 좋다고 생각하셨는가?
옛 수도자들 중에도 먹고 배설하는 것은
수도생활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 먹는다

먹는다는 행위가 매우 중요하다

먹 거리는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있다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하신 말씀이
육체적으로 먹는 것을 소홀히 하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입는 것을 안 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후대 희랍 철학자 중에 스토아학파의 이론인 육신은 영혼을 가두어두는 감옥이라는
오로지 영적인 것만 관심을 두고 중심에 두라고 주장한 사람들이다

육신을 먹지도 입지도 않고 오히려 혹독하게 다루어 병만 얻었다
옛날에는 그렇게 해서 병을 얻은 사람을 성인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첫 기적을 혼인잔치에서 일으켰다
예수님 당대는 어려웠다.
먹고 살기 힘드니까 잔치자리를 찾아다녔다

제자공동체를 먹여 살리는 자리가 잔치자리였다
예수님이 잔치기적에 신경을 쓰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느냐 못 알아듣느냐에 신경을 쓰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배고프냐 아니냐에 관심이 있으셨다

신앙생활도 먹는 것과 떨어뜨릴 수가 있다
수도자들의 기도생활도 좋은 음식을 먹어야 잘 된다
자기 안에 있는 욕구를 해소해야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강조하신 것인가?

사람의 마음은 머무르는 자리가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쓰는 말들이 무의식에서 선택적으로 튀어나온다

내 마음이 1차적 욕구인 생리적 욕구에 있으면
먹고 입는 것에 대한 말들이 튀어나온다

마음이 영적욕구에 있으면 기대치 때문에
생리적 욕구에서 나온 말에 화가 난다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만나는 사람에 대해 기대감을 갖고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대감을
상대방이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화가 나는 것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에 신경 쓰지 말고
영원히 살아날 양식인 말씀에 힘쓰라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대상이 되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영적, 육적인 존재이다
죽지 않는 한 3가지 욕구인 생리적 욕구, 정신적 욕구, 영적 욕구를
모두 갖고 사는데 어디에다 신경을 두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내가 먹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내적인 상태가 즉 영혼이 소외가 된 상태인
생리적 욕구가 우선이 되기 때문에
문제를 바로 잡으란 말씀이다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2. 썩어 없어질 양식이 무엇인가?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먹어야 한다
사람의 몸에 당기는 음식들이 있고
사람마다 맞고 안 맞는 음식이 있다


이런 법칙이 정신세계에서도 똑같이 작용한다
음식이 내게 맞는 것이 있고 안 맞는 것이 있듯이
내가 봐야할 책도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가 하면 봐서는 안 될 책들도 있다

성경구절에서도 꼭 봐야할 것이 있고
사람의 심리적 상태에 따라, 그 구절에 따라서는 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들이 어느 특정한 대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대해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개신교 창시자인 루터의 근본교리인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 성경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는데
성경은 주의해서 묵상해야 한다

액면 그대로 나에게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성경에는 윤리적인 내용이 많은데 이것은 영적훈련용이고
또 하나는 치유의 관점에서 하신 말씀도 많다

썩어지지 않을 양식이란 무엇인가?
성장을 말한다
즉 업그레이드(upgrade) 되었을 때 얻는 행복감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보다 낫게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금 이대로 살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더 좋은 것을 준다면 그곳으로 가고 싶은 것은 사람의 욕구이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목적은 하나이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무엇, 무엇 때문에 속상하다는 얘기는 상대방들이 나에게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업그레이드되고 싶은데
내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화가 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왜냐하면 내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는 칭찬으로 얻어지는 자존감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대견한 마음 자신감이 중요하다

문제는 거기 머물러 있으면 위험하다
그것에만 너무 신경을 쓰면 다른 것이 눈에 안 들어온다
내가 정신적 영역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업그레이드가 된다

내가 정신적 업그레이드가 안 되면 상대방에게 짜증을 안겨주게 된다
정신적 세계를 업그레이드 하고 싶으면 책을 보게 된다
이 때 문제는 책이 그냥 사람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는 팸플릿 놀리지 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냥 읽고 남에게 나를 과시하는 것이기에
상대방에게 감동을 못 준다
정신적으로 내가 성장하기 위해 취해서
그것을 소화시켜 보였을 때
 

상대방들이 감동을 받는다
그것을 업그레이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보라는 것이다
성경은 주식이고 부식인 다른 책들도 많이 봐야한다

썩어 없어질 양식에 신경 쓰지 말고
영원히 살아날 양식인 말씀에 힘쓰라는 것이
성장을 하려면 주식과 부식인 책들을,
갈증을 채워주는 것들을
봐야한다는 말씀이다
나이를 먹었는데도 보는 책들이 그냥 재미로 보면
판단력에서도 오판이 나오기 시작하고 노망이 든다
그런데 젊어서도 노망기를 부리는 아이들이 많다
관심사가 너무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노망기가 든다
힘 좋은 아이들이 노망을 부리는 것은 못 봐준다

-썩어질 양식을 먹으며 깨달은 것들, 5가지-
1)인생은 때로는 부당하고 공정치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
사실은 누구에게나 다 불공평하고 부당하고 공정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아, 이것이 인생이구나 하고 깨달았을 때 자기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다

2)죽음이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

고통이나 죽음은 직면해야 될 대상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사람은 어차피 한번 죽는다는 현실을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직면하고 도전할 때에는 두려움이 줄어드는데 피하려고 하면 점점 커진다
그래서 옛날 수도자들이 선배수도자들이 죽고나면
시체를 그대로 두고 죽음에 대해 묵상했다고 한다


3)죽음에 대해 묵상하다 보면 죽음을 바라보기 싫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에 집착한다
고대 그리스의 에피큐로스(Epicouros)학파에 의하면 지나치게 먹는 것이나,
지나치게 노는 것에 집착을 한다고 한다

놀고, 먹고 마시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보는 것이 무서워 장례식장에 절대로 안 간다

4)죽음에 대한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직면을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런 깨달음을 얻어야지만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5)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궁긍적 책임은 나에게 있다
죽고 난 다음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누구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이것을 깨달아야 유아적 상태에서 성숙한 상태로 업그레이드 된다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중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에 대해 대비하시는 말씀이 많다


영적인 사람은 관계로만 만난다
내가 한번 만난 사람은 나와의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고 기회를 주고 기다린다


육적인 사람은 기다림이 없다특징이 결과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득이 없으면 가차 없이 정리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나한테 돈이 되는 사람들만 만나면
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그 사람을 이익으로만 만나지
좋아서 만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관계를 맺는데 관계가 그냥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그냥 사람이 좋아서인 관계가 건강한 것이다
그런 관계로 만나는 사람들은 영적인 사람들이다

육적인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에게 득이 되는가, 실이 되는가를 따져서 만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중에 손해를 본다

영적인 사람들은 내가 한번 만난 사람들은
나와 인연이 있다고 생각해서
상대방이 잘못해도 계속 기회를 준다
기다려준다

영국의 어떤 시인이 말하길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외로운 섬이라고 했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 시인은 우울증 환자였다
섬의 윗부분만 본 것이다
아래 있는 산 덩어리를 못 본 것이다

자기 자신이 외로우니까 섬이라고 한 것이다
사실은 인간은 섬이 아니라 산이다

저 사람과 나라는 인간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듯 인간이 하나라는 것은
밑에 산 덩어리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 세계는 하나다
융의 집단적 무의식 또한 인간은 하나의 역사를
모든 인류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 안의 자기(self)의 조각들이 갈라져 떨어져 나가면
정신분열현상이 일어난다
내안에 있는 자기(self)조각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면 나갈수록
내적인 힘이 약하다고 한다

특히 자기 안에 있는 보기 싫은 조각과
똑같은 조각을 만나면 투사되어 죽이고 싶은 것이다
떨어져 나가는 self조각들이 다 나라고 깨달았을 때가 가장 힘이 셀 때이다

섬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통합이라고 한다
심리치료는 분열된 자기조각들을 모아 하나로 하는 작업이다

예수님이 이웃사랑을 강조하신 이유도
자기 자신을 통합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야 힘이 생겨 자기에게 집중시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섬 밑에 있는 하나의 덩어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들여다보면 아, 하나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힘들고 나쁜 놈이 나하고 같은 조각이었다고 생각하면
덜 힘들고 덜 화를 내고 덜 판단할 수 있다
맨날 남의 성격을 욕해봐야 득이 없다는 것이다

성격장애인 사람은
내 근처에 있는 섬들이 다 미운 것이다
너희들은 왜 나만 못하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경증장애인 우울증이 심한 사람들은
다른 섬은 다 예쁜데 왜 나만 미울까 생각한다
자기를 돌볼 줄 모르고 미워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너는 왜 남보다 못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성격장애와 신경증 장애가 만나면 악연이다
잘못 만난 것이다
한 사람은 짜증을 내고

한 사람은 자기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심리적 지옥에서 못 벗어난다

1. 육적인 사람들은 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섬 자체에만 집착한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예수님의 이웃사람을 사랑하라 하신 말씀처럼 다리를 놓으라는 것이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기 힘들면 다른 사람들과 다리를 놓으라는 말씀이다
자꾸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피하지 말고 대인관계를 갖으라는 것이다
이웃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나에게 득이 되기 때문이다

2. 영적인 사람들은 늘 기도하는 사람들
하느님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본적 욕구에 대해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기 안의 욕구를 누르면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게 되어있다
사람의 무의식은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기 싫어한다
그럴 때는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면 된다

하느님과 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영적인 사람들이다
영적이냐, 육적이냐는 내가 기도를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른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느님과 대화를 하고 있느냐 아닌가를 보고
영적인 사람인가 육적인 사람인가를 얘기한다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나와 다리를 놓은 사람들이다
영적인 사람들이다

하느님과의 대화채널이 없으면 육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의 세속이다
사실은 그것이 더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바리사이들이 그래서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이다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안의 감정에 대해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본다

자기 안의 어두움을 바깥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적으로 문제가 많은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자기 안에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다 자기라고 인정을 한다

병적인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어두운 부분은 자기가 아니고
바깥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바깥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공격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화가 나는 것이다

나는 문제가 없고 네가 문제라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싫어하고 끼리끼리는 편안한데
그 안에서만 돌기 때문에 에너지가 확산되지 않는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모두 다 마귀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왜 화를 내는지,
왜 인색한지,
내가 왜 남을 미워하는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고
마귀 탓으로 돌리면 자기 성장이 없다

내 안의 어두움과 밝음은 내것이다
내 것을 잘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나를 찾아내고 대화를 해야한다

그래서 나를 통합해야지만,
하나로 만들어야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영성심리의 가르침이다




--- 작성자 박용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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