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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31 조회수767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Is a lamp brought in to be placed under a bushel basket
or under a bed, and not to be placed on a lampstand?
"Take care what you hear.
(Mk.4,21,23)


 
제1독서 히브 10,19-25

 
19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21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십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23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24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25 어떤 이들이 습관적으로 그러듯이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으니 더욱더 그렇게 합시다.


 
복음 마르 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실 것 같습니까? 그것도 그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사랑한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설렐 것 같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어제 아주 예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생면부지의 한 여성에게 ‘사랑합니다.’라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하지만 아무런 감응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화’도 났습니다. 제 감정이 메말라서 그런 것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사실 저에게 ‘사랑합니다.’라고 했던 사람은 어느 대출 회사 직원이거든요.

어제 낮 시간에 전화가 울려 퍼집니다. 사무실에 있었던 저는 전화를 받았지요. 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이러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사랑합니다. 고객님. 조명연 고객님 되시죠?”

한창 바쁜 시간에 걸려온 이 전화에 짜증이 납니다. 분명히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했음에도 말이지요. 왜 그럴까요? 그 사랑은 말뿐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여성은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씩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진짜 사랑이 있을까요?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말뿐인 사랑에 오히려 짜증이 나고 화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말뿐인 사랑이 흘러넘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숭고한 단어인 이 사랑이 앞선 상황에서처럼 짜증나고 화가 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말뿐인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세상의 빛이 되어 환하게 비출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시는 더 큰 사랑으로 보상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러한 점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라고 질문하시지요. 등불은 주위를 밝게 밝히는 역할을 하는데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으면 그냥 꺼질 수밖에 없습니다. 꺼지지 않더라도 주위를 밝힐 수가 없게 되겠지요. 여기서 등불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늘 힘주어 강조하셨던 사랑의 실천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실천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말로만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 아닙니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 그래야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수 있는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보상을 이렇게 말씀해 주시지요.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바로 우리가 사랑에 힘쓴 만큼 주님으로부터 사랑이 주어질 것이며, 오히려 거기에 더 보태어서 받게 된다는 보상의 말씀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사랑할만하지 않습니까?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신영복).



빛이 있기에 건물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체코 프라하에서...



우울증 벗어나기

일본의 한 심리학자가 우울증에 대해서 연구를 하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울증에 걸려본 적도 없는 내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기분을 알 리가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우울증을 체험하기로 작정하지요. 그래서 일부러 하루에 천 번씩 한숨을 쉬었고 절대로 웃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생활을 3개월 동안 하니까 극도의 우울증에 빠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학교 강의도 또 학회에도 나가지 않으면서 늘 푸념만 내뱉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우울증을 체험한 그는 이제 여기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계속해서 했던 한숨 쉬는 것, 푸념을 던졌던 것을 멈추고 대신 날마다 웃기 시작했습니다. 딱히 웃을 이유가 없어도 무조건 웃었답니다. 그러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표정과 말이 감정을 결정한다고 하지요. 이 심리학자는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이를 증명했던 것이지요. 우리의 평소 표정과 말을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부정적인 말, 어두운 표정들이 우울증을 만듭니다. 우울증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가 쫓아낼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말, 환한 웃음을 짓는 표정들을 통해서 충분히 가능합니다.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요.’라고 말하기보다 억지라도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또 다른 세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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