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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의 세속화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2-01 조회수476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마르코 4,26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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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 주시기 위하여 인간의 말(언어)로 나타내시고자 고심하시는 흔적이 엿보여 집니다. 지금 시대의 우리는 또한 무엇에, 무슨 비유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나라는 그동안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그런 곳은 결코 없다 라고 설명하신 신부님도 계십니다. 다시말해서 육신의 부활은 없으며 그들이 생명을 누리는 '천국'이라는 곳은 죽음의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 라며 단지 이 세상이 있을 뿐이다 했습니다.

성경 말씀 몇 줄이 아닌, 말씀 전체를 살펴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신부님의 설명과 같이 동일하다고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신학자들에게만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다음과 같이 뿌려졌습니다. 

[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루카 4, 18)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복음서)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루카 7, 22) ]

그외에도 예수님의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신학자(및 신부님)들만의 복음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되고 하느님의 나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 됩니다. 신학자(신부님) 분들의 강의가 진리에 거스리는 거짓인 경우도 허다히 많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뜻(세속의 이념)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성화시켜야 했지만, 그분들과 같은 거짓된 강의와 거짓된 메시지 및 거짓된 출판물 등에 따라서 그 반대의 현상인 세상이 교회를 세속화 시켜 갑니다.

교회의 세속화는 현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인식되어졌으며 그리스도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새로운 복음화 '신앙의 해'가 선포되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말씀으로 새롭게 한다'는 의미가 명백하게 있습니다. 

광야에서 [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마태오 4. 8 - 9) ] 했습니다.

악마는 그리스도(메시아)가 세상을 가지면 세상을 잘 다스리는게 아니라 도리어 세상의 지배를 받게 되어질 것이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께 세상의 영광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세상의 메시아'로 변질시키고자 유혹한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세상을 보면 세상은 교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교회의 세속화'가 되어진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성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의 지배를 받아서 세상은 교회를 도리어 세속화 시켜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세상을 향해 문을 닫고자 하는 그런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이 땅은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의 나라로 성화되어져야 한다는 것에 한치도 부정되지 않습니다. 누가 이 땅에서 하느님의 나라(사랑의 나라)를 부정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사는 땅이 '악의 토양'으로 되는 것을 바라는 존재는 광야에서 예수님께 세상의 영광을 보여주며 그 대신에 세상의 지배를 받게 유혹했던 악마 뿐입니다. 사탄의 나라는 하느님의 나라에 의해서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즉, 사랑의 토양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같은 하느님의 나라는 가난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복음에 의해서 이루어 집니다. 신학자(신부님)들의 높은 영성에서 그 나라가 오지 않고 저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는 작은 사랑에 의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사람들 가운데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곧, 작은 사랑은 겨자씨와 같은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낮은 곳은 시련과 궁핍의 그리스도적 고난이 끊이지 않습니다.

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씨앗이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은 '사랑'으로 수렴해 갑니다. 이 사랑은 인간(세상)에게서 오는 육의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의 사랑을 말합니다. 

'육에서 오는 사랑'과 '영에서 오는 사랑'을 분별하지 못하면 상기에서의 내용과 같이 교회는 세속화되어져 버립니다. 무엇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인지 식별하지 못하면 하느님의 나라(사랑의 토양)은 사람이 사는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벗어나면 진리와 거짓을 식별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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